붉은 숫자가 가득한 2월의 달력이 흐뭇하게 다가오는 요즘, 극장가에는 명절 관객을 맞이하는 매력만점 영화가 즐비하다. 세대를 불문하고 즐길 만한 유쾌한 영화, 따뜻한 영화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검사외전', '로봇, 소리', '오빠생각'으로 이어지는 한국영화 쓰리톱은 올해 설 연휴의 대표주자다.

◆한국영화 기대작 3편


'검사외전'(감독 이일형)은 가장 돋보이는 흥행 기대작이다. 한국영화의 대들보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은 두 배우 황정민과 강동원이 처음 만난 데다 신명나는 범죄 오락물이니 연휴에 이만한 선택이 있으랴. 황정민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뒤 복수를 준비하는 검사를, 강동원이 그 행동대장이자 꽃미남 사기꾼을 맡았다.

감옥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허를 찌르는 반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역할분담도 재미있다. 황정민이 든든히 판을 깔고, 강동원이 펄펄 나는 형국이다. 묵직한 범죄물로 시작해 유쾌한 코미디까지 선보이며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카리스마를 벗어던지고 능글맞은 사기꾼에 쏙 녹아들어간 강동원의 색다른 매력이 영화의 키 포인트다. 나올 때마다 웃긴다. 겨울과 명절에 어울리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도 빼놓을 수 없다.


<골든타임>, <미생> 등의 드라마로 이미 눈도장을 찍은 배우 이성민이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가 단연 눈에 띈다.

영화는 잃어버린 딸을 찾아 10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는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소리'는 추락 소식으로 NASA를 발칵 뒤집어놓은 감시위성. 국정원의 추적을 피해가며 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조금씩 딸을 이해하게 된다.

어느 순간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신파에 대구지하철참사의 비극을 다루지만 섣부르게 위로하거나 눈물을 짜내는 대신 사려 깊게 아픔을 어루만진다. 무생물과도 어우러지는 이성민은 단연 압권이고, '소리'에 목소리를 입힌 심은경은 신의 한 수다.

<오빠생각>(감독 이한) 또한 눈물 없이 보기 힘든 휴먼 드라마다. 전쟁으로 지켜야 할 모두를 잃은 육군 소위가 갈 곳 없는 전쟁 고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맞게 되는 작은 기적을 그렸다. 드라마 <미생>, 영화 <변호인>을 통해 아이돌보다 배우로 입지를 굳힌 임시완이 주연을 맡아 제 몫을 든든히 해낸다. 하지만 <오빠생각>의 오빠는 임시완이 아니라 극중 순이의 오빠 동구로 나오는 아역스타 정준원이다. 순이 역 이레가 오빠를 생각하며 부르는 '오빠생각'을 들으면 눈물을 참기가 쉽지 않다. 전쟁이란 비극 속에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동요들을 듣다 보면 절로 노래를 따라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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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대작 3편

어느덧 대세 장르로 떠오른 애니메이션도 빠질 수 없다. 검증받은 흥행 대작 <쿵푸팬더3>은 그 중심에 선 작품. 푸근한 인간미가 넘치는 뚱보 팬더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코믹 무협 애니메이션이 5년 만에 3편으로 돌아왔다.

이미 <용의 전사>로 입지를 굳힌 포에게 또 다른 최강 악당이 나타난 가운데, 진짜 판다 아빠를 찾은 포가 깊은 산속 판다 마을에 입성하는 과정이 눈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코미디와 액션을 접목시킨 시리즈의 매력이 여전하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까지 출연하며 발로 뛰는 홍보를 했던 잭 블랙 효과 또한 기대할 만하다. 특히 눈길을 붙드는 것은 귀염둥이 판다들의 단체 등장. 여기에 가족애를 강조한 따뜻한 메시지가 더해져 의미가 풍성해졌다. 설 연휴 어린이 관객, 가족 관객을 유혹하기에 손색없다.

4편까지 나온 다른 전통의 애니메이션도 있다. 노래하는 다람쥐 3형제를 앞세워 전세계에서 11억달러가 넘는 수입을 거둔 <앨빈과 슈퍼밴드> 시리즈의 4편, <앨빈과 슈퍼밴드:악동 어드벤처>다. 흥부자 다람쥐 3인방이 아빠 데이브의 청혼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이 92분 내내 펼쳐진다. 흥겨운 춤과 노래, 흥부자 다람쥐들의 매력이 여전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한국 애니메이션 <최강전사 미니특공대:영웅의 탄생>도 설 연휴 관객과 만난다. 1년 전 개봉해 열성 어린이 팬들의 지지를 얻었던 <미니특공대> 시리즈의 2번째 극장판이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미니특공대의 탄생기가 그려질 전망이다. TV시리즈에선 볼 수 없는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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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외화 3편

대중적인 흥행영화와 조금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자객 섭은낭'은 감독의 감성과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 있는 독특한 무협영화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당나라 시대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정인에게 버림받은 뒤 자객으로 키워졌다가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돌아온 여성 검객 섭은낭의 이야기다.

정통 무협 영화와는 전혀 다른 문법, 아름답게 고증된 건축과 의상, 드라마틱한 자연이 독특한 감흥을 안긴다. 배우 서기,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 등이 호흡을 맞췄다.

올해 아카데미가 주목한 <캐롤>도 빼놓을 수 없는 영화. 두 여인이 주인공인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다.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 귀부인과 백화점 점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절제된 대사와 작은 움직임과 눈빛만으로 꾹꾹 눌러담은 강렬한 감정을 선사하는 두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열연은 단연 압권이다. 여성미 넘치는 당대의 패션 또한 여성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다른 아카데미 기대작 '빅쇼트'는 경제위기의 와중에 떼돈을 번 괴짜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2008년 세계 경제를 흔든 미국발 금융위기를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하게 들여다본다. 크리스천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 등 배우들의 앙상블 또한 빛난다.


[설날 즐기기-영화] ‘방화 vs 애니 vs 거장’ 결론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421호·제4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