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 “경영 효율화” vs “오너 지키기”

국내 기업계에 지주회사 전환 바람이 거세다. 지주회사 제도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복잡한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풀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내 지주회사는 일반지주 164개, 금융지주 9개 등 총 173개로 늘었다. 지주회사 체제는 지배구조의 투명화, 안정적인 경영권 등이 순기능으로 꼽히는 반면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커지는 역기능을 드러내기도 한다. <머니S>는 오는 6월 38년 만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앞둔 국내 지주회사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나아가 지주회사 선진형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했다.<편집자주>

[지주회사의 두 얼굴] ①‘지주사 전환’ 열풍이 분다


"4년 숙원을 풀었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지난해 12월 주주총회서 지주사 전환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숙원'이란 말을 동원하며 지주사 전환의 의미를 강조했다. 우리은행 지주사인 우리금융지주는 지난달 11일 새 출발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지주사 전환 바람이 거세다. 2017년 초부터 롯데, 현대중공업 등 굵직한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선언하더니 최근에는 SK텔레콤도 합류했다. 금융기업인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 완료와 동시에 올해를 도약의 해로 정했다.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대거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효율적 경영구조 만들기'와 '경영권 강화를 통한 오너 지키기'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왜 전환하나

롯데그룹은 지난해 10월 지주회사 체제로 공식 전환하고 공정거래법 관련 규정에 따라 금융계열사 지분 매각에 한창이다. 이미 롯데캐피탈, 롯데카드와 롯데손보의 예비입찰이 진행됐다. 롯데는 지주사 전환으로 신동빈 회장의 계열사 지배력 강화, 효율적인 그룹 운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텔레콤도 중간지주사 전환에 나섰다. 지난 1월 CES2019 간담회에서 박정호 사장은 중간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박 사장은 “팬들의 열화와 성원에 힘입어 꼭 올해 (지주사 전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지주사 전환을 완료하며 고심하던 순환출자고리 문제를 해결했다. 효성도 지난해 6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자회사 지분 관리와 투자를 담당하는 지주회사 효성과 나머지 4개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마무리했다.


지주사 전환, “경영 효율화” vs “오너 지키기”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는 보다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해져서다. 지주사 전환 시 자회사별 사업부문 분리로 경영전략에 따라 매각이나 인수 등이 수월해진다. 부실 계열사가 생길 경우 '꼬리자르기'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부채 건전성도 개선된다. 실제 국내 지주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일반 기업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지주사는 193개(2017년 9월 기준·2019년 1월 기준 173개)로 평균 부채비율은 38.4%다. 공정거래법상 규제 수준인 20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또한 대기업집단 소속 지주사들의 평균 부채비율도 44.8%로 법상 규제 수준(200%)은 물론 2017년에 지정된 57개 대기업집단의 평균부채비율(76.0%)보다 크게 낮다.

소유구조도 지주사-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해진다. 예컨대 SK텔레콤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SK하이닉스가 SK㈜의 손자회사로 공정거래법상 인수합병(M&A) 투자에 제한을 받고 있어서다. SK텔레콤이 SK㈜와 SK하이닉스 사이의 중간지주사가 되면 공정거래법상 이 걸림돌이 사라진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 전환을 노리는 이유다.

우리은행은 현행 은행법에 발목이 잡혔던 케이스다. 우리은행은 지주사가 아니어서 자기자본의 20%까지만 출자가 가능해 그동안 비은행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 시 우리은행은 자회사 출자비율을 130%까지 확대할 수 있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증권이나 부동산신탁, 보험사업 등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손 행장이 지주사 전환을 숙원으로 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영권 강화도 가능하다. 롯데를 비롯, 최근 지주사 전환을 시도한 회사들의 주 방식은 발행 주식을 주주에게 배분하는 인적분할이다. 이는 경영권 강화가 주 목적이어서다. 실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주사 전환으로 지분율이 13%로 뛰어 신격호 명예회장 3.6%, 신동주 전 부회장 0.3%를 크게 상회하며 사실상 경영권 분쟁을 종식시켰다. 이처럼 지주사 전환은 지분 배분으로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에 이용된다.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금융지주 본점에서 열린 지주 출범식에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출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금융지주 본점에서 열린 지주 출범식에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출범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주사 전환, 규제 강화되나
최근 기업들의 지주사 전환 열풍은 현 정부 기조에 따른 흐름으로도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기업 개혁과제로 총수 일가의 편법 지배력 확장 억제, 지배구조 개선 등을 꼽았다. 지주사 전환은 대통령이 언급한 개혁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지배력 문제는 주로 순환출자에서 비롯된다. 대기업 오너가 A계열사의 주식을 확보해도 B나 C계열사의 주식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에 A사가 B사의 지분을 사고 B사는 C사의 지분을, C사는 다시 A사의 지분을 사는 비정상적인 편법 순환고리를 만들어 지배력을 유지해 왔다. 이같은 구조를 지주 체제로 바꾸면 지주사와 '지주사의 계열사'로 단순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정부는 지주사 전환을 기업들이 너무 경영권 강화로만 이용하자 전환 규제강화를 고려 중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손자회사 출자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교수는 "지주사의 자회사가 100% 지분을 갖는 손자회사를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계열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회사가 분할하거나 합병할 경우 자사주가 분할 신주로 전환되지 않고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권 강화로만 이용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며 "체제 전환을 위한 비용에만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고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어 자칫 주주간 분쟁만 커질 수 있어 리스크가 크다. 단지 경영권 강화 때문에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행하려는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미 전환된 지주사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전망이다. 현재 국회에는 지주사가 유지해야 할 부채비율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는 등 건전성 감독 기준을 높이거나 지주사가 손자회사를 보유할 때는 반드시 사업 연관성이 있는 회사로 강제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0호(2019년 2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