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방송 스튜디오. /사진=경기방송 홈페이지
경기방송 스튜디오. /사진=경기방송 홈페이지
지상파 라디오 방송사업자인 경기방송이 부동산 임대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을 폐업키로 결정했다. 이는 방송사 초유의 자진폐업 사례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조건부 재허가가 떨어진지 약 3개월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17일 방송업계 등에 따르면 경기방송은 지난 16일 주주총회를 열고 방송사업 폐업 안건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경기방송 "언론 탄압, 폐업 이유"



경기방송 주주들은 지난 16일 오전 11시 정기 주총을 진행했다. 총 주식수 51만9900주 중 83.12%인 43만2150주가 참석해 성원이 이뤄졌다. 이중 99.97%인 43만2050주가 폐업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방송 측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언론탄압으로 인해 방송사업 폐업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반일 불매운동을 폄하한 경기방송 경영진의 발언 후 지자체가 지원하는 기존 예산이 줄줄이 중단되거나 삭감돼 매출이 급감했다는 이유에서다. 올해도 주요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됐다고 경기방송 측은 설명했다.

내외부 세력의 경영 간섭으로 인해 주인없는 회사로 전락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경기방송은 입장문을 통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고 부당한 언론탄압과 외부 음해세력에 맞서야 할 노조와 일부 직원들은 이들의 뜻과 장단을 맞추듯 내부 동료, 상사, 임원들과 투쟁하는 양상을 전개시키는가 하면 대주주들을 범법자 취급까지 해 지나친 경영간섭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방송은 직원 40명 내외의 작은 회사임에도 잦은 헤게모니 싸움에 패권다툼 양상의 내분을 십수년간 겪으면서 정상적인 방송언론으로서의 기능은 완전 상실했다”며 “타 언론사와 지역사회에 폐만 끼치는 사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언론계·노조 "폐업은 대주주 사익 추구"




언론탄압이 폐업의 주요 배경이라는 경기방송 측의 주장과는 달리 언론계와 노조 측은 대주주의 사익 추구일 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전국언론노동조합 경기방송지부는 “매년 15억원 이상의 순이익이 나고 억대의 주주배당금을 나눠준 회사가 하루 아침에 매출 하락으로 폐업한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며 “폐업 사유를 밝힌 입장문은 자체 광고 수익은 한 푼도 없고 지자체의 지원금만이 유일한 수익이었다고 자백한 것과 다름없다. 무책임한 경영과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에 재허가 심사에서 기준점에 미달하는 점수를 받은 것을 놓고 언론탄압의 끝장판이라고 적반하장격으로 달려들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방송사 최초 폐업 결정이 진정한 시민과 노동자의 지역방송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다”며 “방통위는 지금부터라도 경기방송 노동자가 제시하는 지역방송의 편성, 인력, 재원 등의 비전을 새로운 방송사업자 허가 심사 기준에 반영해 달라”고 전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재허가 심사 두달여 만에 폐업결정을 내린 것은 방송사업에 대한 공적 책임이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예령 전 경기방송 기자가 “지난해 대통령 기자회견 당시 발언했던 질문이 재허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경기방송에 대한 재허가 심사는 법률·경영·회계 등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친 후 이를 바탕으로 방통위가 의결하는 절차로 진행됐다”며 “지난해 11월 재허가 심사위원회 심사 과정은 물론 방통위 의결 과정에서도 김예령 기자의 질의와 관련된 사항은 전혀 검토되거나 논의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허가 조건 거부, 폐업으로



지난해말 재허가 심사위원회는 중점심사사항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의 실현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 항목을 과락(116점·250점)으로 평가했다. 총점도 재허가 기준인 650점 미만(647.12점)을 기록했다.

방통위는 심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경영투명성 제고 및 편성의 독립성 강화 계획’ 제출을 요구했지만 경기방송이 “현 상황을 유지하겠다는 취지의 간략한 답변서를 제출하는 등 불성실하게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 2013년, 2016년 재허가 과정에서도 경영투명성과 관련된 조건이 반복적으로 부가된 바 있으나 개선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23일 경기방송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청문주재자가 “주주와 이사진의 이권에나 기여하는 듯한 경기방송에 대해 언제까지 경기도의 얼굴, 기간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방통위가 연명해 줘야 할지를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방통위는 재허가 심사위원회, 청문 결과를 고려하면 충분히 재허가 거부가 가능하나 청취자 보호를 위해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경기방송 이사회는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24일 폐업을 결정해 노조 측에 전했고 주주 역시 이사회 결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사회와 주총에서 폐업을 결정한 경기방송은 조만간 경영진이 방통위에 폐업신고를 할 계획이다. 1997년 경기도 유일의 지상파 민영 라디오(99.9MHz) 방송사로 설립된 경기방송은 23년간의 긴 역사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