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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기업대출 출혈경쟁의 부작용에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기업대출 경쟁과 관련해 최근 만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같이 우려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방침에 지난해부터 기업대출 경쟁이 제살깎아먹기식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지난해부터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무리한 기업대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시중은행들은 역마진(손실)을 감내하며 기업대출 점유율을 늘리는데 혈안이 돼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올해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 목표를 지난해보다 대폭 높여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 전문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안팎에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기업대출 잔액도 빠르게 늘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업대출 잔액은 770조1450억원으로 전년 동월(707조6043억원)과 비교해 1년 새 8.8%(62조5407억원) 늘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 대출 잔액이 109조4832억원에서 138조9484억원으로 한 달 새 26.9%(29조4652억원)증가했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98조1211억원에서 631조1966억원으로 5.5%(33조755억원) 급증했다.
은행들이 기업대출 확대에 주력하는 것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1.5~2.0% 이내로 관리하기로 하면서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빚 비율을 2027년엔 10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수립한 상태다.
GDP 대비 가계빚 비율은 2017년까지만 해도 90%를 밑돌았지만 2021년 105.4%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2분기 101.7%로 떨어졌다. 하지만 세계 4위 수준으로 여전히 높다.
통상 은행들은 고객에게 예금을 받거나 은행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모은 뒤 이를 운용해 수익을 얻는데 가장 대표적인 자금운용 방법이 대출이다. 가계대출의 성장세가 제한적인 만큼 기업대출 확대로 수익성을 보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은행 기업대출이 빠르게 늘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시중은행은 부실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다며 기업대출 확대에 따른 우려를 일축하고 있지만 고금리 기조 속 기업대출 급증은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금리는 지난해 말 잔액 기준 연 5.31%로 2013년 3월(5.31%) 이후 약 10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제로(0)금리 시대였던 2021년 7월(2.79%)과 비교하면 2년5개월 만에 1.9배 치솟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금 사정은 악화했다. IBK기업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 의원실에 보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기업은행과 거래 중인 한계 중소기업은 1만5776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1만581개)과 비교해 49.1%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기업대출 고정이하여신(NPL)은 7391억원에서 9294억원으로 38.0%(1903억원) 증가했다.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까지 위기를 감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은행권은 이럴 때 일수록 저마진 기업대출 출혈경쟁보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현장 점검 등을 통해 건전한 기업대출 자산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운영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에 대출보다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국은행은 이달도 9차례 연속 금리 동결을 이어갔다. 기준금리 인하로 이자부담이 완화할 때까지 대출로 연명하는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