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 본사 1공장 전경. /사진=한미반도체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향 TC 본더 독점 지위를 잃고 고전하는 가운데 오너 중심 지배구조에 대한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을 필두로 한 경직된 경영 체계가 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SK하이닉스와의 갈등 과정 중 예정됐던 기업설명회(IR)을 갑자기 연기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의사결정이 있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곽 회장은 한미반도체 지분 34.0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곽 회장의 아들인 호성씨와 호중씨는 2.05%의 지분을 확보했고 누이 혜신씨(4.05%) 명신씨(4.10%) 영미씨(4.36%) 영아씨(4.11%)도 인당 4%대의 주식을 갖고 있다. 이들의 지분율은 약 55%로 오너일가의 강력한 지배력 아래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곽 회장은 그동안 고배당 정책을 통해 주주 달래기에 나서는 동시에 지배력을 강화해왔다. 2023년부터 지금껏 총 423억원 규모의 자기 회사 주식을 사재로 사들였다. 두 아들에 대한 증여도 이어가는 중이다. 재작년 400억원대, 지난해에는 3000억원대의 주식을 두 아들에게 넘겼고 다음달도 각각 360억원대 주식을 증여할 계획이다. 곽 회장 지분은 33.1%로 줄고, 아들들은 2.55%씩 늘어나게 된다.

곽 회장의 이러한 행보는 두 아들의 승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장남은 23세, 차남은 18세로 당장 경영에 뛰어들긴 이르지만 향후 세대교체를 위한 마중물을 미리 마련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곽 회장이 24살인 1998년 한미반도체에 입사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걸 고려하면 두 아들의 경영 참여 역시 빠른 시기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너일가 중심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어서 인지 이사회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미반도체 이사회 구성원은 총 3명, 이중 사외이사는 1명뿐이다. 적은 인원 탓에 현재도 사외이사 중심의 별도 지원조직을 비롯해 감사위원회 등이 없다. 이사회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아 오너 견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산 규모가 2조원 미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사회를 미흡하게 구성한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시각이 많다. 공정거래법상 자산 2조원 이상인 기업부터 내부거래 및 지배구조 공시 의무 등을 갖지만, 최근에는 자산 2조원 미만 기업들도 이사회 선진화와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서는 것과 대비된다. 진에어의 경우 현재 별도기준 자산이 약 1조2000억원이지만, 이사회 구성원 10명 중 8명을 사외이사로 뒀고 ESG위원회, 안전위원회, 보상위원회 등을 설치 및 운영 중이다.

부실한 이사회 구성은 위기 대응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달 22일로 예정됐던 IR을 돌연 연기하고, 1분기 실적 발표 이후로 일정을 변경했다. SK하이닉스의 듀얼벤더 전환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빠른 대응 대신 계획된 IR마저 연기해 시장의 우려를 키웠다.

한미반도체도 이사회 개편 필요성을 인지하고 개선 의지를 갖고 있다고 알려졌으나 별다른 변화는 아직 없다. 지난해 5월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통해 "향후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이사 선임을 위한 별도의 기구 설치에 관해 검토할 것"이라며 "내부 절차나 지침을 마련하고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 등을 실시하겠다"고 밝히긴 했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이사회 개편 관련 사안은 아직 검토 단계"라며 "사외이사 교육 등은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기업에만 의무화된 사항이고, 자산이 약 7000억 원인 당사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