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 산업이 구조적 침체의 바닥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망을 확보했다. 내수 부진과 글로벌 공급 과잉, 미국발 고율 관세라는 삼중고에 짓눌려 온 철강업계는 올해 'K스틸법' 통과를 계기로 산업 재편의 출발선을 다시 그리게 됐다. 단기 처방이 아닌 중장기 산업 정책 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올해 철강업계는 수요와 가격, 수익성 모두에서 동시 압박을 받았다. 건설 경기 침체로 내수 철강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중국발 저가 철강재가 글로벌 시장을 잠식했고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여기에 전기료 인상과 환경 규제 강화까지 겹치며 국내 철강사의 비용 부담은 가중됐다. 대형사뿐 아니라 중소 철강업체와 가공·유통업체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으며 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를 통과한 K스틸법은 철강 산업을 독립적인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정부 지원 근거를 법률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개별 정책이나 일회성 지원에 머물렀던 철강 산업 육성 방안이 하나의 제도 틀로 묶이면서 정책 연속성이 확보됐다.
법안의 핵심은 철강 산업 고도화와 지속 가능성 확보에 맞춰졌다. 노후 설비 개선과 생산 공정 효율화,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 전환을 위한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 지원이 명시됐다. 불공정 수입 철강재에 대한 대응 근거도 법에 담기며 반덤핑·세이프가드 등 통상 대응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산업 전환 과정에서 중소 철강사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 근거 역시 포함됐다.
붕괴 위기에 놓였다는 평가까지 나왔던 국내 중소 철강 생태계를 복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업계의 기대가 크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 구조 속에서 원가 압박과 거래 불안정에 노출돼 있던 중소 업체들은 이번 법을 통해 최소한의 정책 보호막을 확보하게 됐다. 단순한 연명 지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환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정부와 업계는 K스틸법을 발판으로 고부가가치·친환경 철강으로의 체질 개선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자동차 강판, 에너지·방산용 특수강 등 고급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탄소 저감 기술을 경쟁력으로 삼아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철강을 단순 소재 산업이 아닌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쉬움도 적지 않다. 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전기요금 인하나 에너지 비용 완화 방안은 법안에 직접 반영되지 못했다. 친환경 전환을 요구하면서도 에너지 비용 부담을 그대로 둔 점은 정책 간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곧바로 경영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인 목소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