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도, 실적도 반도체로 쏠리고 있다. 반도체 업황 회복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이 시장의 40%에 육박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올해 코스피 이익 증가분의 '6할'을 반도체가 가져갈 것이란 전망까지 제기됐다. 반도체가 우리 경제와 기업의 핵심 축으로 재부상할수록 27년 전 '반도체 빅딜'로 사업을 내려놓았던 LG그룹의 선택이 재계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덧 40%에 육박하게 됐다. 시장에서는 두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20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나온다.
올해 코스피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 전망치는 427조원으로 전년 대비 41%(129조원) 상승할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 중 반도체 부문의 성장세는 독보적이다. 반도체 이익 전망치는 166조원으로 전년 대비 96%(81조원) 급증하며 사실상 상장사 전체 이익 증가분의 60% 이상을 견인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가 우리 경제와 기업을 지탱하는 핵심 축으로 우뚝 서자 재계의 시선은 반도체 사업을 내려놓아야 했던 LG의 과거로 향한다. 최근 LG전자가 겪고 있는 실적 부진과 맞물려 재계 일각에서는 "만약 LG가 당시 반도체 빅딜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사업을 키웠다면 오늘날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이 됐을 것"이라는 탄식까지 나온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연결기준 매출 23조8538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매출을 경신했지만 수익성 면에서는 109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9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27.5% 급락한 2조4870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데 영업이익이 2조원대로 내려앉는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LG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른바 반도체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겼고 그 대가로 약 2조6000억원을 받았다. 현대전자는 이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현대그룹에서 분리됐고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변경했다. 구조조정을 거친 하이닉스는 2012년 SK그룹에 인수돼 오늘날의 SK하이닉스로 재탄생했다. 당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이를 평생의 한으로 여겼고 빅딜 과정에서 조정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발길을 끊었을 정도로 반도체는 LG 내부에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LG가 빅딜로 얻은 것도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발을 빼는 대신 이후 지주사 체제 전환과 GS그룹과의 계열분리 등 굵직한 구조 재편을 마무리했다. 화학·소재 분야에 투자를 이어가며 배터리 소재·사업을 키웠고 디스플레이에서는LG LCD를 거쳐 1999년 LG.Philips LCD(현 LG디스플레이의 모태)를 출범시키는 등 미래 산업에서도 성과를 축적했다.
반도체라는 초대형 캐시카우가 사라진 이후 LG는 그룹 전체를 견인할 '압도적 수익원'이 약해지며 수익성 부담이 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스마트폰 사업 철수로 한 축이 줄었고 진입장벽이 낮은 생활가전 시장의 경쟁이 격화된 데다 전통적 수익원이었던 LG화학 석유화학 부문도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전장(VS), 냉난방공조(HVAC) 등 기업의 거래(B2B)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산업 전반을 끌어올리는 반도체의 파급력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LG의 고전이 반도체를 포기한 개별 기업의 선택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황 호조에 힘입어 기록적인 실적을 내는 동안, 내수 기반 기업과 전통 제조업은 고비용 구조와 수요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갇혀 기초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SK의 이면에 여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성장 정체가 가려지고 있다"며 "특히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관세 장벽 강화 등 대외적 악재가 겹치면서 반도체라는 보호막이 없는 기업들은 사실상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