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이 '데이터 중심 AI' 체제로 급격히 재편되는 가운데 테슬라 완전자율주행(FSD)의 국내 배포가 한국 모빌리티 산업에 거대한 변곡점을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 기술이 과거의 '규칙 기반'(Rule-based) 통제에서 탈피해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는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김한규·김우영 의원실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테슬라 FSD 국내 상륙과 우리나라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행사에는 최진욱 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융합모빌리티팀장, 최준원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류종은 삼프로TV 기자, 장진택 미디어오토 대표, 우향제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총괄과장, 박용선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장, 고낙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신기술개인정보과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과거 자율주행 시스템이 인간이 설정한 교통 법규와 안전 수칙에 따라 움직였다면 이제는 수백만 대의 차량이 수집한 주행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판단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방식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테슬라가 고가의 라이다(LiDAR) 없이 오직 카메라 영상만으로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를 국내에 선보이면서 국내 완성차 및 자율주행 기업들도 기술적 근간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최진욱 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팀장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로봇택시 및 소비자용 자율주행차 시장의 현황을 분석하며 국내 기업들의 위기감을 환기했다. 최 팀장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시장은 웨이모처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멀티 센서' 방식과 테슬라처럼 확장성에 방점을 둔 '카메라 온리' 방식이 대립하고 있다.
그는 "테슬라는 유일하게 소비자용 차량 판매와 로봇택시 사업을 병행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며 반면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라이더 단가를 200달러 수준까지 낮춰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해외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율주행 시스템의 비용 하락이 시장 확대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저가 혹은 무료로 배포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사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여전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 솔루션 구축에서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팀장은 "자율주행차는 결국 '바퀴 달린 슈퍼컴퓨터'가 될 것이며 이는 고용량 배터리와 정밀 제어가 가능한 전기차 플랫폼 위에서만 꽃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원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기술적 본질에 집중했다. 최 교수는 현재 자율주행 AI가 거대언어모델(LLM)과 유사한 '스케일의 법칙(Scaling Law)'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의 양과 컴퓨팅 인프라의 규모가 커질수록 AI의 판단 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과거 룰 기반 시스템에서는 도로 위 돌발 상황(Edge Case)이 발생할 때마다 엔지니어가 일일이 코드를 수정해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인간의 주행 데이터를 모방 학습해 스스로 대응 방안을 찾아낸다"고 분석했다.
최근 화두가 된 '시각·언어·행동(VLA) 모델' 이른바 '추론하는 자율주행'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는 차량이 단순히 앞차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 공사 현장이나 사고 현장을 맞닥뜨렸을 때 언어적 추론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최적의 행동을 결정하는 기술이다. 다만 이러한 고도화된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며 이는 국내 스타트업이나 대학이 개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이 변수로 지목됐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는 'GPU(그래픽처리장치) 공유 인프라' 구축이 우선순위로 꼽혔다. AI 학습에 필수적인 엔비디아 GPU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공유 센터를 운영해 중소기업과 대학의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 교수는 "외산 기술에 의존하는 자율주행은 산업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자율주행 AI를 근본부터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