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금에서 빠져나온 개인 자금이 주식과 금융투자 상품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증시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예금 대비 수익률이 높은 투자 대안이 늘어난 데다 대출 금리 상승으로 가계의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예금 썰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23일 기준 약 650조8219억원으로, 지난해 말인 674조84억원보다 약 23조원 줄었다. 지난해 10월 말 21조8674억원이 줄어든 이후 11월과 12월에는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큰 폭의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요구불예금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 성격이 강해 개인 자금 이동 흐름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이 같은 추세가 월말까지 이어질 경우 요구불예금 감소 폭은 2024년 7월(29조1395억원) 이후 1년6개월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선 은행 예금에서 이탈한 자금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금융투자 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코스피지수는 장중 5000선을 넘나드는 강세 흐름을 이어가며 자금 유입이 지속되고 있다. 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종합투자계좌(IMA) 등 증권사 단기 금융상품으로의 자금 이동도 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 예금과 성격이 유사한 연금저축보험 역시 성장세가 둔화됐다. 연금저축시장의 약 65%를 차지하는 연금저축보험은 지난해 1~3분기 동안 3000억원 감소하며 역성장을 기록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2025년 한 해 동안 0.1%(1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연금저축보험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예금자 보호를 받지만, 채권 중심의 저위험 자산을 운용해 수익률이 제한적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의 12개월 만기 예금 최고금리는 2.4~3.2%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험사가 판매 중인 연금저축보험도 지난 3분기 기준 수익률이 1%대에 그쳤다. 일부 상품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금융투자업권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95조5260억원으로 사상 처음 9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초 50조원대에 머물던 투자자예탁금은 코스피 상승과 함께 가파르게 증가해 최근에는 90조원대를 넘어섰다. 앞서 한 달 전에는 CMA 잔고가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기도 했다.
은행 내 퇴직연금 자금도 단순 예금 성격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운용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확정급여형(DB) 잔액은 완만한 증가세에 그친 반면, 개인이 운용 방식을 선택하는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IRP 잔액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늘었다. DC·IRP는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여전히 크지만, 비보장형 상품의 장기 수익률이 크게 앞서면서 운용 성과에 대한 인식 차이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5대 은행의 퇴직연금 원리금보장형 상품 수익률은 DB·DC·IRP 모두에서 3년물 2%대 중후반, 5년물 2%대 초중반, 10년물 1%대 후반에 머물렀다. 반면, DC·IRP의 비보장형 상품은 은행별·상품별 차이는 있으나 3년 수익률이 5~15%, 5년 수익률이 6~13% 수준을 기록하며 원리금보장형과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구불예금은 장기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의 성격이 강한데,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방향으로 개인 자금 성향이 바뀌고 있다"며 "주식시장 강세가 이어지는 한 예금 이탈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증시 조정 국면에 들어설 경우 예금과 같은 안전자산의 매력도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자금은 주식형 펀드에 집중되고 있다"며 "2025년 한 해 동안 주식형 펀드로 82조8000억원이 유입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1월에도 20조6000억원이 추가로 유입되며 증시 유동성의 주요 동력은 퇴직연금과 ETF(상장지수펀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