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현재 지하경제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지하경제는 흔히 매춘, 마약, 장물, 밀거래 등 불법적인 경제 활동을 일컫는다.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탈루 소득을 지하경제라고 지칭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부터 부족한 재원을 채우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국세청과 관세청에게 미션을 전달했다. 과세당국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탈세 세력을 잡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사채시장은 물론이고, 주류·제약 업계를 상대로 강도 높게 세무조사를 벌였다. 최근에는 고소득 전문직 및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기획 세무조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지하경제 규모는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 일부는 국세청 조사의 허점을 악용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지하경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성지인가. <머니위크>에서 현장취재를 통해 전모를 알아봤다.
이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난감했다. <대한민국 지하경제를 파헤치다>라는 기획안 중 '불법 사채시장'에 대한 취재지시가 기자에게 내려졌을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취재를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걷고, 뛰고, 전화하고, 만나고, 욕먹고, 쫓아다니고….
이렇게 부딪치며 만난 불법 사채시장은 분명 정부가 들여다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했다. 기자가 만난 그들만의 비밀세계는 '불법과 탈세의 산실'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그들에게 법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고, 음지에서 활동하지만 너무나 당당했다.
"법으로 우리는 못 잡아",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취재과정에서 들었다. 과연 어떤 편법과 불법이 행해지고 있는지 현장 및 동행취재를 통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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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으로 부딪치며 만난 대한민국 속 다른 세상
지난 4일 취재지시를 받자마자 일단 길거리로 나섰다. 회사 근처인 서울 서린동부터 시작해 종로, 남대문, 명동 등을 무조건 걸어 다니면서 길바닥과 식당 등 자영업소 앞에 뿌려진 불법대출과 관련한 전단지(메모장·명함 등)를 주워 담았다. 이렇게 하기를 약 3시간. 가방 안에는 100개가 넘는 전단지가 모였다. 전단지 하나를 골라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대출을 문의하는 기자에게 잠시 뒤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약 5분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기자가 문의를 한 불법대출업자의 사무실 대출담당 양부장이라고 했다. 그는 대뜸 일수를 쓰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며 없다고 답하자 그는 "무슨 일을 하며 얼마가 필요하냐"고 다시 물었다. 우선 취재를 위해 호프집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서류를 준비하고 난 뒤 연락을 다시 달라고 말했다.
그가 요구한 서류는 사업자등록증 사본, 임대차계약서 사본, 주민등록 등·초본,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등이었다. 일단 만나보기 위해 거짓으로 "서류를 준비했다"며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바로 담당직원이 연락할 것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10분 뒤 또 다른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 대출사무실 담당직원이라고 소개한 그는 가게 위치를 물으며 1시간 뒤에 만날 것을 요구했다.
하얀색 대형 바이크를 타고 나타난 그에게 명함을 건네며 신분을 밝히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취재를 위해 꼭 만나고 싶었다. 불법사채시장에 대해 알려 달라." 하지만 기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온갖 욕설과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더니 서둘러 바이크를 타고 사라졌다. 잠시 뒤 대출담당이라던 양부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더 이상 취재는 불가능했다.
◆ 서류 없는 대출… 법 악용하는 사채시장
결국 취재방법을 바꿨다. 지인을 통해 자영업을 하며 불법사채를 쓰고 있는 음식점 사장 최상문(43)씨를 소개 받았다. 마침 최씨는 7일 '꺾기'(대부업계 은어·미납 상태에서 돈을 더 빌려 기존 대출을 청산하는 것)를 하기 위해 일수업자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4월7일 오후 3시. 최씨과 동행해 일수업자를 만났다. 20대 초반의 어려보이는 수금사원과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대출담당 부장이 자리에 나왔다. 최씨는 그들에게 기자를 가게 운영을 도와줄 사촌동생으로 소개했다.
사채업자는 다소 경계하는 듯싶더니 이내 대출을 진행했다. 최씨는 50일 전 이들로부터 1000만원을 빌렸다. 그들은 최씨에게 이자 20% 조건에 선수수료 7%와 당일 입금해야 하는 일수금 15만원을 제한 후 총 915만원을 빌려줬다. 80일 동안 매일 15만원씩, 총 1200만원을 갚기로 했다. 연 이자율이 257%로 법정 최고이자율인 38.9%를 훨씬 초과하는 조건이었다.
최씨가 지금까지 갚은 돈은 750만원. 하지만 급하게 자금이 필요해진 그는 사채업자와 상의 후 꺾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채업자는 1000만원을 빌려주는 대신 미수금 450만원과 이자 20% 조건에 선수수료 7%, 당일 입금해야 하는 일수금 15만원을 제한 후 최씨에게 465만원을 줬다. 이렇게 대출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어떤 서류도 작성하지 않았다. 다만 최씨가 인감증명서 1통만을 건넸을 뿐이다.
사채업자들이 가고난 뒤 최씨에게 서류작성을 왜 안했는지 물었다. 최씨는 "이들에게는 대출에 대한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5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10곳이 넘는 사채업자들과 거래를 했지만 대출과 관련한 서류작성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사채업자들이 받아가는 서류는 존재한다고 했다. 사고(미수 발생)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처음 대출 시 약속어음과 상가임대차보증금 채권양도서류, 채권공증서류 등에 인감도장을 찍도록 한다는 것.
최씨가 증언한 불법 사채시장은 법을 악용하지만 법이 존재하지는 않는 곳이었다. 특히 대출에 대한 서류가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이 때문에 경찰과 법원, 국세청에서는 불법과 탈세가 이뤄져도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영세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 유흥업소 직원 등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급전거래이기 때문에 사채업자의 입맛대로 불법이 자행되고 있었다.
◆ 법과 규제가 없는 그들만의 세상 속으로
최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사채업자와 직접적인 취재가 안돼 난항을 겪고 있던 중이었는데, 명동에서 사채업을 하는 사장을 소개해주겠다는 반가운 전화였다. 연락처를 받은 후 사채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취재에 대해 설명하고 취재협조를 부탁했다. 그는 수금사원과 함께 다니며 취재해보라고 했다.
4월8일 오후 2시. 수금사원과 동행했다. 바이크도 한대 빌려 수금사원의 뒤를 쫓아 다녔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남대문시장 인근에 위치한 한 식당이었다. 그는 가게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바이크를 세우고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수금 왔습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한 아주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채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5만원을 수금사원에게 주고는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수금사원은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화연락이 잘 안되는지 투덜거리며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계속되는 전화연락을 통해 수금 스케줄을 잡는 듯했다. 어느 정도 스케줄이 잡혔는지 다시 바이크를 타고 남대문시장 안 상가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별다른 연락 없이 곧바로 한 가게에 들어섰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빨리 왔네"라며 6만원을 건넸다. 그는 수금사원에게 "몇개 남았어? 아 지겹다 지겨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며 짜증 섞인 말투로 중얼거렸다. 두번째 수금을 마친 후 수금사원은 연락이 안 닿는 곳이 있어 1시간 정도 시간이 빈다고 했다. 마침 궁금한 것이 많았던 터라 차나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인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 후 수금사원과 미니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선 수금사원은 올해 22세로 충남 대전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됐냐고 묻자 그는 "아는 형님의 소개로 1년 정도 수금하며 배우고 있다"면서 "배운 것, 가진 것 없는 놈이 돈 벌려면 이것만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4년 정도 더 일을 배운 후 독립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에게 듣는 이곳 사채시장은 그야말로 '황금의 제국'이다. "이것만큼 돈 벌기 쉬운 일도 없다. 양심에 찔리는 것은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 정도쯤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다"는 게 그의 변이다.
불법인 탓에 단속 등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도 물었다. 그는 곧바로 "그런 것 없다. 경찰이나 국세청이나 절대 우리를 못 잡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이 있어 봤자 증거가 안 남는다"며 "간혹 채무자가 신고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더라도 대부분 무혐의 처리되거나 가벼운 벌금만 문다"고 설명했다.
혹시 대출서류가 없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것도 있지만 여기는 모든 것이 가짜다. 우리는 이름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 그는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을 부를 때 성과 직함만으로 부른다고 답했다. 또한 전화기도 일명 '대포폰'을 사용해 신고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단 한차례의 단속이나 세금 추징도 없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다시 수금을 하기 위해 나섰다. 명동에 있는 한 한정식 가게에 들러 수금을 마친 후 그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은행이었다. 그는 가방 안에서 10여장의 현금카드를 꺼냈다. 그 카드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대출을 해준 사장님들의 개인 현금카드"라며 "자영업자들은 가게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가급적 방문수금을 꺼리기 때문에 그들의 카드를 통해 거래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통장거래까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셈이다.
그는 은행별로 돌아다닌 뒤 명동, 동대문, 신촌, 종로, 홍대 등의 가게 10여곳을 더 들렀다. 그 중 2곳에서는 수금이 안돼 그곳 사장들과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지만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을 상사에게 보고한 후에야 그의 일과는 끝났다.
서로 "고생했다"며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문득 궁금증이 몰려왔다. 수금사원을 다시 불러 "이 일이 그렇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히 말했다. "법망에 걸려들지 않고 세금도 안 내는데 배운 것 없는 놈이 이 짓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 세상은 법보다 돈이 최곱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