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가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국내 모바일결제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ICT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이 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사는 고객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일단 이들 기업과 손을 잡고 있지만 속내는 편치 못하다. 장기적으로 모바일 지급결제 주도권을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2일 IT와 카드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모바일 간편결제서비스인 안드로이드페이를 이르면 다음달 국내 출시한다. 이를 위해 구글은 조만간 신한·현대·롯데·하나카드와 관련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2015년 9월 미국에서 안드로이드페이를 출시한 후 미국 전역의 맥도날드·서브웨이 등 700여개의 소매업체와 제휴를 맺고 미국 내 시장을 공략했다. 이후 유럽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시장의 점유율을 높였고 지난해 싱가포르, 홍콩, 일본시장을 뚫으며 아시아시장으로도 발을 넓혔다.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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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 모바일결제시장… ’페이 경쟁‘ 본격화

안드로이드페이가 국내 출시되면 ICT기업간 모바일 간편결제시장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모바일 결제시장은 크게 오프라인, 온라인, 메신저 시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가 각기 다른 시장을 노릴 것이란 분석이다.
카카오페이는 최근 알리페이로부터 2억달러를 투자받아 제휴 가맹점 확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LG전자도 G6에 LG페이를 탑재해 오는 6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국내 전업계 8개 카드사 가운데 7개사와 계약 체결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일 결제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모바일결제시장은 2014년 14조8698억원에서 지난해 34조7031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는 전세계 모바일 결제시장이 2015년 4500억달러(약 505조4800억원)에서 2019년 1조800억달러(약 1213조16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모바일 결제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각 페이는 다양한 서비스를 내세워 고객 유치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15년 3월 발표한 ‘삼성페이가 지불결제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앞으로 모바일결제시장에서의 업체간 경쟁 양상에 대해 “모바일 플랫폼 경쟁에서 서비스경쟁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플랫폼(애플리케이션)이 동일해지면서 고객확보를 위해 업체간 서비스 경쟁이 심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카드사, 페이와 손잡지만 속으론 ‘불안’

이처럼 모바일결제시장을 두고 ICT기업 간 경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국내 신용카드사는 좌불안석이다. 모바일 상에서의 지급결제 주도권을 ICT기업에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현재 대다수 카드사가 앱카드를 통해 모바일시장에서 지급결제서비스를 제공 중이지만 오프라인시장 경쟁력은 약해 보인다. 온라인시장에서 앱카드는 비밀번호만 누르면 결제가 완료돼 고객 편의성이 높다는 평가다. 카드사가 앱카드 발급 수를 꾸준히 높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오프라인시장에서는 앱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단말기가 부족한 실정이다. 삼성페이가 기존 단말기에서도 사용 가능한 마그네틱 보안전송(MST) 기술을 적용하며 오프라인 결제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사이 카드사들이 결제주도권이 뺏겼다는 분석이다.

물론 삼성페이 등 각종 페이가 출시됨에 따라 카드사도 오프라인시장에 손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카드사 관계자는 “고객이 삼성페이를 이용하지만 최종 결제수단은 신용카드"라며 "삼성페이에 신용공여기능이 부여되지 않는 한 지급결제 플랫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대형 플랫폼으로 성장한 ICT기업이 카드사에 서비스이용수수료를 부과하면 카드사의 협상력이 약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민지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ICT기업의 지급결제시장 진출 영향과 카드업계의 대응방안’에 따르면 ICT기업은 전통적으로 플랫폼 구축 이후 가격 협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애플은 지난해 미국 카드사에 0.15%, 중국 카드사에 0.03%의 수수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또 ICT기업이 기존 금융인프라를 이용하지 않는 결제서비스를 도입하면 카드사의 역할은 더욱 축소될 것이란 분석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삼성페이가 현재는 이용수수료를 받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과하지 않겠냐”며 “다른 ICT기업들도 국내 시장에 진출해 경쟁을 벌이며 초기에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을테지만 시장지배적사업자(독점사)가 되면 카드사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