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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10일(이하 현지시각)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취임식이 열렸다. 같은 해 4월27일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종이 참여한 자유 선거에서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62.65%의 득표율로 압승한 결과였다. 이를 통해 342년간 이어진 백인 지배는 막을 내렸다.
만델라는 취임사에서 "오늘은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승리이며 자유가 다시 태어난 날"이라며 백인과 흑인의 화합을 약속했다. 그는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수감자에서 대통령이 된 만델라… 국민의 아버지로
만델라 인생은 평등과 자유를 향한 여정이었다. 1938년 당시 남아공은 국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네덜란드계 백인들이 흑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이에 대항하기 위해 만델라가 흑인해방운동 지도자로 나섰다. 그러나 그는 1962년 반정부 활동으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간 복역했다. 투옥 중에도 세계적 권위의 인권상을 받은 만델라는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1990년 석방된 후 인종차별 철폐와 민주화 이행을 위해 정부와 협상을 주도했고 1993년 데클레르크 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 결과 1994년 모든 인종이 참여한 민주 총선이 열렸고 만델라는 수감자에서 대통령까지 올라섰다. 재임 중 그는 '국민화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백인과 흑인이 함께하는 통합정부를 구성하고 진실과화해위원회를 설치해 과거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사회적 치유에 나섰다. 재건개발계획을 통해 의료, 교육, 전기, 주택 등 사회 기반 시설 확충에도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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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에도 계속된 평화의 여정
1999년 퇴임 후에도 그의 여정은 계속됐다. 만델라는 '넬슨 만델라 재단'을 설립해 교육, 보건, 인권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퇴치와 아프리카 내 분쟁 해결에 힘썼으며 부룬디와 콩고민주공화국의 평화 협상에도 참여했다.만델라는 수형 생활 동안 얻은 폐 질환으로 오랫동안 투병했다. 그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90세를 넘긴 고령과 폐 감염증이 재발해 2013년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만델라 타계에 전 세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으며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 정부청사 앞에는 그의 공적을 기리는 만델라 동상이 건립됐다. 그의 생일인 7월18일은 '만델라의 날'로 지정되어 매년 봉사와 화합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다만 만델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은 여전히 인종 간 경제 격차와 사회적 갈등에 직면해 있다. 2025년 남아공 정부는 고용 형평성 개정법을 시행하여 기업에 인종별 고용 목표를 부과했지만 이는 일부 백인과 소수 인종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또 최근 외국인 혐오와 인종 간 폭력 사건이 증가하며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