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일본에서 또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일본 국적자로는 올해 생리의학상을 받은 혼조 다스쿠 교수가 24번째다. 우리나라에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왜 나오지 않는지, 언제쯤이면 가능할지 묻고 살피는 언론기사는 해마다 이맘때면 반복되는 단골메뉴다. 필자도 간혹 질문을 받는다. 노벨상을 받는 것이 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아니지만 기다리는 국민께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1986년 대학에 입학했다. 1980년대 중반을 전후해 대학에 입학한 세대가 우리나라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첫세대라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많다. 1980년대 중반 학번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할 때는 이전세대와 다른 점이 있었다. 이전에는 외국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았다면 이때는 외국으로 진학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였다. 필자도 국내 학위를 받았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비슷한 연배의 물리학자에 비해 교육과 연구에서 손해를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훌륭한 연구를 하지 못한 이유는 능력 부족이지 국내에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좁은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서 국내 박사학위가 경쟁력을 갖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중반 학번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좋은 연구를 수행하는 국내의 지도교수들이 길러낸 박사학위 첫세대다. 불과 20~30년 전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일본의 첫 노벨상 수상자는 유카와 히데키다. 교토대학 물리학과를 1929년에 졸업했으니 26학번이다. 오사카 대학에서 조교수로 있다가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위 ‘국내학위’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국내에서 경쟁력 있는 박사학위를 배출하기 시작한 시점이 우리와는 60년의 차이가 있다.
학계도 일종의 생태계다. 자연을 보라. 건강한 생태계는 자족적이어서 외부의 큰 도움 없이 지속가능하다. 이처럼 학계가 건강하려면 한나라 안에서 과학자로 성장하는 전 과정이 자족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모든 과학자가 국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 국내에만 머물러도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배출된 박사학위자가 다시 지도교수가 돼 국내 박사학위 제자를 배출하기 시작한 시점은 자족적 학문생태계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10년 전 일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 곧 배출되기가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사실 필자의 걱정은 이보다 더 깊다. 국내의 연구지원과 평가방식을 보면 노벨상은 앞으로도 30년 안에는 어려워 보인다. 노벨상을 목표로 하지 않아야 오히려 노벨상이 가까워진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3호(2018년 10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청계광장] 우리나라 노벨상은 언제 나올까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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