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다!”
“2층에도 불이 붙었다”
“호텔 건물에 시뻘건 불길이 올라오고 있어요. 대원들 빨리 소방호스로 불을 진압해주세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대장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자 8명의 어린이 소방대원이 강한 물줄기를 내뿜는 소화용 물총으로 호텔 화재 진압을 시작한다. 왁자지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실제 소방관과 거리가 멀지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린이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주황색 소방복의 가슴에는 푸른색의 삼성화재 CI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지난 2월27일 잠실 롯데월드 내에 문을 연 키자니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방관 체험 풍경이다. 키자니아는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로 교육과 엔터네인먼트가 결합된 에듀테인먼트 시설이다. 모든 사물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실제 크기의 3분의 2로 축소한 직업체험 도시다. 멕시코에 본사를 둔 키자니아는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봄날 한산한 평일 오전 시간대를 골라 3시간가량 어린이와 어른의 입장을 오가며 키자니아를 둘러봤다.

◆현실 같은 경제환경, 90여개 직업 체험
어린이 경제교육장 '키자니아'에 들어간 기업들
입장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입장권이 대한항공의 보딩패스를 그대로 따왔다. 비행기를 타고 키자니아에 입국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춘천 남이섬의 '남이나라' 입국이 생각난다.

키자니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은 90여가지다. 소방관을 비롯해 뉴스 앵커, 의사, 판사, 스튜어디스, 모델, 연구원, 수사관 등 다양한 직업들이 어린이를 맞는다. 부모의 선호도가 높은 직업만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택배회사 직원이 되기도 하고 빌딩을 오르기도 하며, 해충을 퇴치하기도 한다. 키자니아 멕시코시티에는 구두닦기도 체험 직업 중 하나일 정도로 직업군이 다양하다.

직업 체험을 하면 10키조(키자니아에서 통용되는 화폐단위) 정도를 벌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주로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직업은 키조를 내고 그 밖의 체험 직업은 돈을 버는 식이다. 이 돈은 키자니아 내 롯데백화점 등에서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입장할 때 기본적으로 50키조가 주어진다.

키자니아는 직업 체험 공간을 실제처럼 꾸미기 위해 38개 회사와 4개 업무협력기관이 파트너사로 참여했다.

참여 기업은 각 체험현장을 지원하고 직원 교육도 시킬 만큼 열의가 높다. 대표적으로 대한항공은 보잉 727 항공기에 실제 좌석을 배치하는 한편 키자니아 수퍼바이저(체험 실습 직원)의 승무원 교육까지 도맡았다.

개장 초기라 아직 운영하지 않는 직업도 있다. 축구경기장, 건설현장, 문화재 발굴현장, 자동차 디자인센터 등이다. 축구경기장은 스포츠 용품이나 음료 업체, 건설현장은 건설사처럼 유관 참여 기업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
어린이 경제교육장 '키자니아'에 들어간 기업들

◆금융권 키자니아 활용 ‘대단하네’

“자, 물건을 직접 만져보고 어떤 상품에 투자해야 할지 골라보세요.”

이승연(6) 양은 수퍼바이저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참 동안 물건을 만져본다. 키자니아에서 실제로 판매되고 있는 책가방, 학용품, 의류상품 등이 투자 대상이다. 이양은 고민 끝에 420키조를 싸인펜과 티셔츠, 백팩에 투자했다. 가상의 1개월의 상품판매량 변화 그래프가 등락을 하더니 최종적으로 528키조를 벌어들였다. 투자수익률 25%다. 현대증권에서 키자니아에서 실시하는 신입사원 투자대회 체험교육의 일부다.

직업 체험비용으로 10키조, 운용 결과에 따라 5키조를 추가로 받는다.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 투자의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이양의 어머니는 “키자니아 내 비상교육에서 운영하는 진로상담센터에 들러 승연이의 직업상담을 한 결과, 금융계통과 사회봉사계통의 진출이 유망하다고 해서 현대증권을 찾게 됐다”면서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가 보다 쉽게 경제개념을 이해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만족해했다.

키자니아는 경제 개념을 심어주기에 적합하게 구성됐다. 출국 수속을 거쳐 키자니아에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은행거래다. 키자니아 내 산업은행에서 여행자수표와 최대 50키조를 교환한다. 모두 산업은행에서 발행하는 지폐로 교환할 수도 있고 예금을 할 수도 있다. 예치된 돈은 키자니아 곳곳에 배치돼 있는 ATM기기에서 찾아 쓸 수 있다.

어린이용이라고 우습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 직불카드와 똑같은 크기의 카드가 발급되고 ATM기기에서 현금을 찾을 때와 똑같이 조회명세서가 출력된다.

키자니아에서 다 쓰지 못한 예금은 재방문 시 다시 찾아 쓸 수 있다. 김영민 MBC 플레이비 과장은 “금리를 어떻게 적용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일정액의 이자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도 들어와 있다. 비씨카드에 들러 카드를 신청하면 얼굴까지 찍힌 e-키조카드가 발급된다. 현금 충전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각 직업체험시설에서 현금 대용으로 결제할 수 있다. 비씨카드 스티커가 붙은 매장에서 카드 사용 시 포인트가 적립되는 점은 현실과 닮았다.

어린이 경제교육장 '키자니아'에 들어간 기업들
◆38개 파트너사, 무엇을 기대하나

직업 체험의 연관성은 다른 곳에도 있다. 키자니아 내에서 인정되는 운전면허증을 따야만 자동차 관련 직업을 수행할 수 있다. 운전면허는 실내 운전면허시험장처럼 모니터를 통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면 발급된다. 넥센타이어가 참여해 운영 중이다.

운전면허가 있다면 현대자동차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대리점에서 시승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운전 중에는 SK에너지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와 세차장을 이용하도록 꾸며졌다. 현대차 바로 옆에는 스피드메이트의 자동차 정비 체험을 배울 수 있다.

어린이에게 인기가 높은 곳은 음식을 만드는 체험코스다.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어 키조를 지불해야 하지만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소방관 체험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미스터피자의 수파피자 만들기는 그런 이유 때문인지 직업 체험이 끝나면 더 즐겁다. 던킨도너츠나 파리바게뜨, 청정원, 칠성사이다, 롯데제과 등은 어린이의 미각을 감동시켜 예비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 소니, SK에너지, GS SHOP, BC카드, 청정원, 롯데제과, 이마트, LG하우시스, MBC, 서울우유, 빈폴, 보령제약, 돌 등 산업군 별 38개 일류기업이 참여했다.

이들 기업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스폰서 기업으로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김상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머니위크>에 기고한 ‘키즈마켓을 노려라’라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김 연구원은 “키자니아가 미래의 소비자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최적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기업로고가 표시된 건물 안에서 유니폼을 입고 직업 체험을 하는 것이 곧 높은 경제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과도 직접 접촉해 아이디어도 얻으면서 구전 마케팅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은 현실성이 높다. 키자니아 관계자는 “이곳에서 직접 피자를 만든 경험이 있는 어린이라면 피자 주문 시 ‘미스터 피자’만을 고집하지 않겠느냐”며 소비자의 구매 패턴 변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