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장이 너덜해질 때까지 달달달 단어를 외운다. 영어 문법은 기본. 토익 공부하다 보면 밑줄 친 곳에 문법이 틀린 곳이 어딘지를 잘 찾아내는 것이 영어 실력이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영어 회화학원에서 외국인과 “how are you? I‘m fine. And you?”를 반복해서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십수년간 반복해 온 영어공부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게 죄다 ‘소용없다’고 말한다.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저자 정찬용 박사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영어 공부를 하라는 걸까? 아니 우선, 영어 단어 하나 외우지 않고 영어를 말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기자가 연이어 던진 질문에 그는 예상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로 답한다. “기자님 영어 공부 몇년 하셨나요? 근데 지금 영어 잘 하십니까?” 말문이 막힌 기자를 향해 그가 보란듯이 답한다. “죽어있는 영어를 배우니까 말문이 트일리가요.” 
 
그가 최근  영어학습 사이트를 열었다. 정앤피플 잉글리시 사이트(www.jnpenglish.com)가 바로 그것. ‘듣기만 해도 영어가 는다’는 그의 '영절하 신드롬'이 제 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까. 정찬용 박사로부터 그의 영어 학습 비법과 함께 직장인을 위한 ‘진짜 영어공부법’을 들어보았다.
 
듣기만 잘 해도 1년 후 ‘영어로 수다떤다'

◆ 영절하 전도사, “독어 공부 안하고 독어 배웠습니다” 
 
사실 그의 ‘쇼킹한(?)’ 영어공부법은 살아있는 경험에서 비롯됐다. 도대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의구심 잔뜩 담긴 기자의 질문세례에 앞서 그가 자신의 경험담을 먼저 털어놓기 시작했다.
 
독해 실력이 영어 실력으로 인정 받던 시절, 그는 우수한 성적을 받아 서울대 조경학과에 합격했다. 독일문화원의 괴테하우스에서 독어공부에 매진한 그는 졸업 후 자신 있게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고, 그가 독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독일 현지 어학원에서도 충격은 이어졌다. “너 독어 어디에서 배웠니?”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자신있게 괴테하우스 이름을 댔지만 선생님의 답은 냉정했다. “지금은 쓰지도 않는 오래된 독일어를 그곳에서 가르쳐 줬을 리가 없어.”

그는 혼란에 빠졌다. 몇년 간 매진했던 독어공부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고민에 휩싸여 있던 그에게 ‘깨달음’을 준 사건은 머지 않아 벌어졌다.

독일에 불어닥친 스모그현상 때문에 기숙사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는 상황. 2주 동안 기숙사에 갇혀 있다 보니 먹을 것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했던 그는 힘없이 침대에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에 갇혀서 힘도 없고 할 것도 없으니 그저 TV만 멍하니 틀어놓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등교를 했는데 독어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에요. 듣는 둥 마는 둥 흘러나오는 대로 2주 내내 반복되는 스모그 소식만 전하는 TV와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독어에 귀가 트인거죠.”

‘아, 외국어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한번 귀가 트이자, 들리는 대로 독어를 따라 하게 되고 말문이 트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가 탄생하게 된 결정적 계기다.

“제 나름으로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어요. 대한민국이 모두 영어에 매달려 있는데, 잘못된 공부법에 시간 낭비를 하는 사람이 한두명입니까.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써먹자고’ 하는 거면, 제대로 된 영어공부법을 알리는 게 먼저 아닙니까.”

◆ “영어,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어렵다고요?”
 
그가 지난 4월 오픈한 영어학습 사이트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당신은 속았다”로 시작하는 지하철 광고 또한 그의 이런 생각을 표현한 것. 10년 동안 영어공부법에 속아 본 경험이 있다면, 제대로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라는 의미다.

“<영절하>가 이슈가 되긴 했죠. 그런데 문제는 책 읽으면서, 또 제 강의 들으면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 금방 되돌아가 영어 단어를 외우고, 틀린 문법을 잡아내며 공부를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온 방안이 영어학습 사이트. 말하자면 그의 영어학습법을 실제로 체험해 보고 성과를 경험해 볼 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때문에 정앤피플학습 사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레벨이 없다’는 것이다. 월 1만원이면 이곳에 올라와 있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말 배울 때를 생각해 보세요. 어려운 말도 자꾸 듣다 보면 쉬운 말은 자연히 들리는 거지, 쉬운 말 다 배웠다고 어려운 말로 넘어가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안들리면 안들리는 대로 소리를 익히다 보면, 쉬운 단어만 들리던 것이 어느날 문장이 들리게 되고 그렇게 영어의 소리에 익숙해 지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독해식 영어학습에 익숙한 한국인의 경우 영어로 소리를 들으면 즉각적으로 이를 한글로 번역하고자 하는 습성이 강하다는 지적. 몸에 밴 이런 습관을 버리고, 그저 들리는 대로 영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제대로 된 영어공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이트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일부러 ‘딴짓’을 권하기도 한다. 머리가 자동적으로 행하는 ‘번역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해 처음에는 등장인물의 옷을 살펴보고, 배경을 둘러보는 등 주의를 딴 곳으로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소리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 질 것이라는 조언이다.

그렇게 소리자체를 받아들인다면 소리를 자연스럽게 따라할 수 있게 된다.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어휘를 습득하게 되고 문장의 구조를 익히게 되고 ‘써 먹을 수 있는’ 말문이 트이게 된다.
단 매일매일 꾸준히 영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다. 시간이 날때마다 편하게 놀이하듯, 5분 듣고 일하다 짬 나면 10분을 듣는 식으로 딱 30분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의 설명대로라면 정앤피플 사이트가 아니어도 영어를 꾸준히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면, 학습효과는 있다. 다만 학습자들의 꾸준한 학습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정앤피플 사이트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얘기다.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이 하는 말은 잘 들리는데, 영어로 수다를 떠는 건 못 듣는 게 한국의 영어 공부법입니다. 언어란 게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것이지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10년 공부한 영어보다 영어를 제대로 듣기만 한다면 6개월에서 1년이면 뒤 영어로 수다를 떠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