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의 하이닉스반도체 새 주인 찾기에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지난 7월8일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 것이다. 통신업체인 SKT가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관심을 표명한 점도 의외지만, 유력 대기업마다 ‘NO’를 외쳤던 하이닉스에 구애의 손길을 뻗어 그 배경에 시장의 관심이 크게 쏠리고 있다. 매출 12조원에 달하는 높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변동성이 큰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하이닉스는 인수기업에 부담스런 매물이기 때문이다. 인수전에 뛰어든 SKT의 재무구조와 함께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얻고자 하는 SKT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뜯어봤다. 
 
SKT, ‘하이닉스 리스크’ 왜 끌어안나

◆현금자산 2~3배 증가…실탄 마련? 착시 현상?
 
재무구조를 따져봤을 때 SK텔레콤이 이번 인수전에서 경쟁사인 STX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올 3월 말 기준으로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603억원. 단기 금융상품 2835억원을 포함하면 약 1조4000억원 정도로, 최대 3조원으로 추정되는 하이닉스 인수 대금의 절반 정도를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SK텔링크 등을 포함한 연결재무제표로 봤을 때는 현금성자산만 1조3850억원, 단기성금융상품 5560억원을 포함하면 약 2조원 정도다. 여기에 연간잉여현금흐름(FCF)만 1조4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작년 4분기에 비해 올 1분기에 급격하게 늘어난 현금성자산. 지난해 3574억원이던 현금성 자산이 1분기를 지나며 1조603억원으로 약 3배가량 늘었다. 연결재무제표로는 약 65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2배가량 뛰었다. 
 
SKT는 2010년 말 SK C&C 보유지분을 두차례 매각한 바 있다. 이 외의 증가분에 관련해서는 단말기할부채권과 단기채무 상환을 위한 회사채 발행이 포함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SKT 측의 설명이다.
 
SKT는 지난해 향후 3년간 단말기할부채권을 하나SK카드로 넘긴 바 있다."어차피 하나SK카드에 돌려줘야 할 부채"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지만, SKT가 당장 짊어져야 할 비용 부담이 줄어들면서 현금 동원에 한층 여유가 생긴 셈이다. 더욱이 SKT는 지난 7월7일 시장에서 만기 3.5개월로 총 4000억원의 기업어음을 발행한 바 있어, 이번 인수전을 위한 포석이 아니겠냐는 업계 일각의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SKT 관계자는 “최근의 CP발행 역시 단기채무 상환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말기할부채권을 포함한 채무 상환이 이뤄지고 나면 현금성자산 규모도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과대해석을 경계했다. 재무제표상에 나타난  1분기 기준 SK텔레콤의 단기차입금은 6800억원가량이다.
 
이처럼 현금성자산에서 안정성을 확보한 만큼 SKT의 인수자금 동원 계획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SKT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인수 결정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자금 계획을 밝히기엔 이르다”며 “외부 차입이나 자산을 매각하는 등 여러 방안을 고심 중이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일단 업계에서는 SKT에서 자체적으로 현금 동원 가능한 1조원가량의 금액을 뺀 나머지 금액을 외부 차입으로 충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조원을 넘어서는 현금성자산이 일시적 착시일 뿐이라는 SKT 측의 설명을 감안한다면 외부 차입 금액이 예상보다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낮은 편이어서 전체적인 재무구조에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최윤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일부 자금 조달을 위해 사채 등을 발행할 수도 있지만 전체 차입금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부채비율이 400%를 웃도는 STX와 비교해 SKT의 지난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약 65% 정도. 지난 몇년간 부채비율 역시 70%대 수준으로 유지하며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글로벌 ICT그룹 도약?… 위험 부담은 여전
 
SKT가 하이닉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금유동성이 풍부한 SKT가 단독 인수에 나선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SK그룹 차원에서 진행되는 인수임을 감안한다면 ‘내수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복안으로 읽힌다. 에너지와 통신사업 등을 주력으로 하는 SK그룹으로선 하이닉스를 발판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서 도약을 꾀할 수 있다. 
 
SK텔레콤으로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반도체사업에 눈독을 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이미 국내 통신업계는 가입자가 5000만명을 넘어서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 SKT 역시 7년째 매출이 12조원 안팎으로 횡보하고 있다.
 
실제로 SKT는 지난 2월 엠텍비전과 공동 출자를 통해 중국에 시스템(비메모리)반도체 전문업체인 SK엠텍을 설립하는 등 꾸준히 반도체사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SKT가 메모리반도체 2위 업체인 하이닉스 인수에 성공한다면, 논리 연산 작업을 수행하는 비메모리와 정보를 저장, 기억하는 메모리반도체를 모두 얻게 되는 셈이다. SK엠텍의 설계를 시스템반도체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는 하이닉스에서 생산, 발빠르게 시장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인수에 성공한 다음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매년 장비에 투자되는 금액만 3조원가량인데다, 수익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SKT의 위험 부담 또한 적지 않다.
 
SKT, ‘하이닉스 리스크’ 왜 끌어안나

최근에는 반도체 경기가 좋아 하이닉스 역시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경우 적자 폭만 수조원에 달한다. 2008년의 경우 하이닉스 순손실액은 4조7000억원에 달했다. 하이닉스 인수가 가장 유력시 됐던 현대중공업이 돌연 인수 포기를 선언한 이유도 반도체 경기 악화 시에 추가될 투자금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SKT의 경우 최근 통신비 기본요금 인하정책과 맞물려 7500억원가량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동시에 LTE 등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 자금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지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SKT가 반도체업종에 대한 사업 경험이 부족해 향후 경영 성과에 의문이 지속되는 상황이다”며 “SKT가 하이닉스의 대주주가 될 경우 추가적인 반도체 설비투자와 적자까지 떠안게 된다면 재정적으로도 상당한 위험 부담이 존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