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들어선 텅 빈 방안. 어두컴컴함 속에 정적마저 흐르는 집. 아마도 ‘싱글’이나 ‘독신’이 사는 집은 대부분 이럴 것이다. 하지만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들의 삶이 변하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본격적인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 시대가 열리면서 이른바 ‘싱글슈머’(single+comsumer)가 수익형부동산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급부상했다. ‘외로운 싱글’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이제는 ‘화려한 싱글’이 가정과 육아에 지친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커버스토리] 혼자인 듯 혼자 아닌 '신주거'

◆ 쾌적하고 집안일 부담 줄인 ‘셰어하우스’

국내 대형건설회사에 다니는 강명기씨(35·가명). 미혼인 그는 서울 논현동의 한 원룸에서 살고 있다. 본가와 회사 간 교통편이 불편해 자취를 택한 케이스다. 주변에서 혼자 살기 불편하지 않으냐고 묻지만 강씨는 혼자 살아서 편한 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5층짜리 건물에 원룸 20여가구로 구성된 이곳은 대부분 강씨처럼 혼자 사는 직장인이 거주하고 있다. 건물이름도 이에 걸맞게 ‘싱글하우스’다. 15㎡ 규모의 원룸에는 조그만 욕실이 있고 좁은 방안에는 침대와 책상,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 생활가전제품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사용하는 방이라지만 기본적인 식사를 해결하기에도 여유롭지 않다. 하지만 강씨는 불편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이유는 건물 1층에 카페가 있기 때문.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이 카페는 입주자 전용 부엌과 서가를 갖추고 입주자에게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제공한다. 독립된 침실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취사 및 휴식공간. 싱글하우스의 주거여건은 쾌적한 환경을 원하면서도 집안일 부담을 줄이고 싶은 강씨에게 안성맞춤이다.

강씨는 “혼자 살면 종종 외로운데 그럴 때도 카페가 꽤 유용한 구실을 한다”며 “서로 비슷한 처지인 입주자끼리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하고 이야기하며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직장인이나 젊은 층 사이에선 ‘셰어하우스’가 인기를 끈다. 개인적인 공간은 철저히 보장받으면서 거실이나 주방 등은 공동으로 사용해 주거비를 아끼고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어 혼자 사는 것이 외로운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 비슷한 이들이 모여 사는 ‘콘셉트 맨션’

셰어하우스 외에도 최근에는 같은 취미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콘셉트 맨션’도 인기를 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주거환경이지만 전문직 종사자 사이에서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조준기씨(38·가명)는 지난해 말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맨션을 구입해 동호회나 일을 하며 알게 된 싱글들을 모아 함께 살고 있다. 이 맨션에는 이들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 지하에 사진 인화 공간을 마련하고 전문적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와 각종 기기를 들여놓은 것.

또한 맨션 입구에는 사진과 관련된 각종 이슈나 뉴스, 해외동향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게시판과 사진촬영 일정 및 전시회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일정표가 붙어 있다. 또한 한달에 한번씩 입주민 모두가 모여 다 같이 사진에 대한 토론이나 서로의 근황 등을 이야기하며 친목을 다지는 행사도 연다.

조씨는 “같은 일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며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함께 할 수 있고 정보공유도 잘돼 입주민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씨의 맨션처럼 특정 수요층을 겨냥해 공간을 구성하는 소형주택을 ‘콘셉트주택’이라고 한다. 좋지 않은 입지여건이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다. ‘음악가 주택’이나 ‘오토바이 마니아 주택’, ‘별장 같은 주택’ 등으로 다양하게 개발되는 추세다.

◆ 소유에서 거주로 개념 이동

최근 국내 주택시장이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혼자 산다고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얻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은 배제하는 집들로 형태가 바뀌고 있다. 일종의 다운사이징이 새로운 주거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싱글이나 자녀없는 젊은 부부, 실버세대와 은퇴세대의 증가로 인해 주거생활에 변화가 일고 있는 셈.

이는 1인 가구의 증가와 국내 부동산시장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주택에 대한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바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5.5%에 그쳤던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23.9%로 급증했으며 올해에는 25%를 넘어 전통적인 4인 가구 비율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2025년에는 1~2인 가구가 62.5%까지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집을 ‘사는 것’(buy)에서 ‘사는 곳’(live)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도 주거 다운사이징의 배경 중 하나다. 굳이 넓은 아파트에서 높은 유지비를 부담하며 사느니 주거면적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소유’보다 제대로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실제로 지난해 자가(自家) 점유율은 53.6%로 지난 2012년 53.8%보다 0.2%포인트 하락했다. 그만큼 임대차시장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임대차시장 역시 재편되고 있다. 특히 전세에서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로의 전환속도가 빨라졌다. 저성장시대에 집주인들이 현금이 나오는 월세를 선호하면서 지난해 월세비중(55%)이 전세비중(45%)을 크게 초과했다. 지난 2012년에는 전체 임대가구 중 월세가구 비중(49.9%)이 전세가구(50.1%)보다 낮았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변화에 따라 정책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주택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낡은 주택을 쉽게 리모델링하도록 허용해 주택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주택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