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고민에 빠졌다. 타이어 수요 감소와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로 주력사업인 합성고무 가격이 떨어졌고 저유가에 따른 수익 불확실성도 커졌다. '형제의 난'도 경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박 회장은 친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험난한 파고를 넘고 있는 박찬구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일까.

◆글로벌 화학기업 꿈꾸지만 시장환경은 '내리막길'


"2020년까지 1등 제품 20개를 갖춰 매출 20조원을 달성하겠다."

박찬구 회장이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밝힌 금호석유화학의 목표다. 그는 지난해 말 '세계 1등' 제품 9개를 확보한 만큼 남은 5년 동안 11개를 추가로 발굴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최근 석유화학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어 그의 이 같은 목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게 사실.

금호석유화학은 올 2분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개선된 실적을 내놨다. 매출액은 다소 줄었지만 수익성 지표를 나타내는 영업이익(641억원, 전년동기 대비 54.7% 증가)과 당기순이익(525억원, 전년동기 대비 142% 증가)도 크게 늘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올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금호석유화학 주력 상품이자 전체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합성고무업계 불황이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지난 8일 일본 도쿄 선물시장의 천연고무 지수는 킬로그램 당 167.80엔으로 3개월 전보다 27%가량 하락했다. 이로 인해 일부 생산업자들은 생산단가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인도 카나타카 지역 천연고무 생산업자들은 kg당 115루피(2061원)에 생산해 110루피(약 1972원)에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게다가 독일계 특수화학업체 랑세스의 아시아 비즈니스 시장 강화와 롯데케미칼의 천연고무시장 진출 등 과열경쟁까지 불거져 박 회장의 주름살을 깊게 한다. 랑세스는 최근 중국 창저우와 싱가포르에 금호석유화학과 경쟁하는 제품인 EPDM(고기능성합성고무)과 Nd-BR(네오디뮴 부타티엔 고무)등 고기능성 합성고무 공장을 증설하고 양산에 들어갔다.

롯데케미칼도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지역에 BR(합성고무 일종) 공장 건설을 마무리짓고 오는 2017년 5만톤 규모의 생산을 앞두고 있다. BR이란 천연고무에 비해 내열성, 내마모성, 내수성 등이 우수해 타이어 제작에 사용되며 내충격성 폴리스 타이렌의 원료 등으로 사용되는 고기능성 소재다. 천연고무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이 언제 선두권 자리를 내줄지 알 수 없게 된 셈이다.

박 회장은 이를 위한 대비책으로 에너지분야의 시장 확대에 나섰다. 저유가와 중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것을 예상해 합성고무 대신 신재생 에너지 부문을 확대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박 회장은 전력 155MWh와 시간당 스팀 910톤(T/H)의 생산능력을 오는 2016년까지 300MWh와 시간당 스팀 1710톤(T/H)으로 확대키로 했다. 투자비만 4300억원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역시 불안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권영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대규모 증설을 앞둔 금호석유화학의 에너지부문 이익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라며 "저유가가 지속되는한 에너지부문 이익 기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고 (금호석유화학의) 재무적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세계 1등 제품 20개 발굴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자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면서 "어려운 글로벌 환경 여건을 인지해 내부 경쟁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형제 간 법적소송… 끝없는 '진흙탕' 싸움
박삼구-찬구 형제 간 지루한 경영권 소송전도 금호석유화학그룹을 둘러싸고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두 사람의 소송전은 2006년 인수한 대우건설을 재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2009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을 키우겠다며 분리경영을 주장하면서 소송전이 시작됐다.

형제 간 소송은 수년에 걸쳐 크고 작은 건수만 10건에 이른다. 소송은 대부분 박찬구 회장이 걸었다. 하지만 그가 승소한 재판은 상표권 1심 외에 아시아나항공 주식매각청구소송 2건이 전부. 이 역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산업이 항소를 준비중이어서 최종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반면 박삼구 회장은 대부분 1~2심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판결을 받아냈다. 금호석유화학이 박삼구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아시아나항공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대법원은 심리도 하지 않고 기각했다. 또 주주총회결의 부존재 확인 등에 대한 소송에서도 법원은 금호아시아나의 손을 들어줬다. 이 외에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표회사인 금호산업이 금호석유화학 등 8개 회사를 금호아시아나에서 제외해 달라는 계열분리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이처럼 잇단 패소에도 불구하고 박찬구 회장은 좀처럼 소송전을 그만두지 않을 기세다. 앞으로 양측의 소송전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박 회장 입장에선 실속을 챙기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막대한 소송비를 물어야 할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형제 간의 볼썽사나운 경영권 소송전으로 금호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박 회장에게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추석합본호(제402호·제40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