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이어진 한국거래소의 독점거래소 구조가 머지않아 마침표를 찍을 전망이다. 그동안 답보상태를 보인 대체거래소(Alternative Trading System·ATS) 설립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대체거래소 설립은 또 하나의 주식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코스피와 코스닥으로 나눠져 있는데 모두 한국거래소에서 거래한다. 한국거래소가 시장을 독점하는 셈. 따라서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체거래소가 설립되면 시장이 다양화돼 긍정적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대체거래소가 설립되면 가격 및 서비스 경쟁이 발생할 것”이라며 “한국거래소보다는 낮은 단계의 시스템이 생긴 뒤 그중 일부가 성장하는 모습이 상상된다”고 내다봤다. 다만 한국거래소는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거래소. /머니위크DB
한국거래소. /머니위크DB

◆대체거래소 설립 발목 잡은 규정
우리나라는 2013년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대체거래소 설립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거래량 한도가 시장 전체의 5%, 개별종목은 10%로 제한돼 대체거래소 출범의 발목을 잡았다. 증권사들이 거래량을 제한할 경우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대체거래소 설립 참여를 꺼린 것.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대체거래소와 한국거래소의 차별화 방침을 고수했다. 대체거래소가 신규상장 및 시장감시비용을 들이지 않고 주식매매만 중개하는 만큼 한국거래소보다 낮은 거래량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시스템 구축비와 운영비 등을 감안할 때 대체거래소의 거래규모가 전체 거래량의 20%를 넘어야 수익을 낼 수 있다며 맞섰다. 대체거래소 설립 허용은 환영하지만 수익이 발생할 수 없는 규제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1년 뒤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 소관 회의에서 대체거래소 활성화를 위해 기존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같은 해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 국정감사에서도 대체거래소 설립이 부진한 점이 지적됐다. 현실적으로 대체거래소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후 대체거래소 설립요건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체거래소 설립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인 거래량 한도 조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증권시장 전체의 5%를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을 준수하면 수수료로 얻는 수익이 연간 50억원에 불과하다. 초기 투자비용 등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남는 것이 없다.


또 한도를 초과하면 정규거래소로 전환해야 하는데 정규거래소가 되면 상장·폐지 및 시장감시 역할을 수행해야 해 운영비용이 늘어난다. 사실상 대체거래소 설립이 어려운 셈이다. 결국 정부가 국정감사에서 대체거래소 설립규제가 과도해 시장참여가 저조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설립조건 고삐 풀려… 연내 출범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6차 금융개혁회의에서 대체거래소 장외거래인프라 등 거래소 외부의 경쟁환경을 조성해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획일화된 자본시장 구조를 다변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후 금융위는 대체거래소를 설립하는 데 걸림돌이 된 조건들을 풀었다.

그동안 숱한 비판을 받았던 거래량 한도규정이 대폭 완화된다. 시장 전체의 5%에서 15%로, 개별 종목은 10%에서 30%로 변경된다. 이외에도 수수료 인하 등 대체거래소 설립에 유리한 조건이 마련된다. 금융위는 이달 중으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증권가에서는 걸림돌로 꼽혔던 규정들이 풀리면서 이르면 올해 첫 대체거래소가 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개정안에는 거래량 한도 상향조정 외에도 주식매매수수료를 최대 절반까지 인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예컨대 현재 한국거래소 주식매매수수료는 1억원 거래 시 2700원(0.0027%)이다. 하지만 대체거래소를 이용하면 반값 수수료가 적용돼 1350원으로 줄어든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낮 정규시간 거래 외에 야간거래도 가능해진다. 거래시간이 늘어나면 일반인도 퇴근 후 집에서 손쉽게 주식매매를 할 수 있다.

이처럼 대체거래소 설립조건이 완화되면서 대형증권사들은 대체거래소 설립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NH투자증권, KDB대우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등 7개 대형증권사는 올해 연말 대체거래소 출범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지난해 자본금 200억원을 모아 공동으로 대체거래소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체거래소 설립을 막는 규정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금융위가 대체거래소의 설립을 원천차단하던 규정을 완화하면서 또 하나의 주식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거래소의 독점구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거래소, 수익구조 고쳐야

반면 한국거래소는 대체거래소 설립요건 완화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체거래소 설립이 실현되면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대체거래소는 빠른 거래체결 속도, 낮은 수수료체계가 장점이다. 예컨대 A라는 종목이 한국거래소에서는 100만원에 매매되는 반면 대체거래소에선 99만원에 가격이 형성된다면 투자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거래를 선택할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체거래소가 출범하면 현재 한국거래소의 수익구조로는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수수료를 낮춰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고 전체적인 수입이 줄어 한국거래소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체거래소의 성장이 가파른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도 한국거래소가 받을 타격이 짐작된다. 이미 미국에는 85개의 대체거래소가 있으며 유럽 153개, 캐나다 9개, 일본 2개 등이 운영 중이다. 1998년 대체거래소가 처음 도입된 미국은 거래비중이 거래량 전체의 40%에 달한다. 대체거래소로 출범해 2008년 정규거래소로 전환한 BATS는 지난해 6월 기준 거래점유율이 20.1%로 24.4%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맞먹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결국 전체 영업수익의 40%가량을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거래소는 대체거래소 출범으로 인한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에 한국거래소가 앞으로 어떤 수익구조를 내세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증권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