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장도연이 출연한 스와로브스키 광고. /사진=스와로브스키
개그맨 장도연이 출연한 스와로브스키 광고. /사진=스와로브스키


그간 부족함 없이 아름답고 빼어난 소위 ‘일류’만을 추구하던 우리 사회가 최근 ‘유치·허무·찌질’로 대변되는 B급에 열광한다. 하지만 B급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이 흐름을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B급은 주류가 될 수 없다 말하고 젊은세대는 B급도 가치가 있다고 항변한다. <머니S>가 B급 문화의 현황과 원인을 살펴보고 그 미래를 내다봤다. <편집자주>
[‘B급’에 홀리고 ‘병맛’에 물들다] ②시대를 파고든 ‘B급’


최근 10~30대 젊은층 사이에서 이른바 ‘B급 감성’으로 불리는 문화코드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B급 감성’의 형태는 뚜렷하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말장난’이 주를 이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각자의 실소를 자아낼 만큼 예측불허로 통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확실한 정보전달을 담아낸다.

그러나 이 같은 B급 감성은 일부 기성세대에게 눈엣가시다. 그들에게 B급 감성은 그저 앞뒤 맥락 없이 엉뚱하게 뒤섞인 황당하고 철없는 비주류에 불과하다. 젊은층은 열광하고 기성세대는 거부감이 뚜렷한 ‘B급 감성’,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젊은층 파고든 ‘언어유희’

“차이코프스키, 위스키, 가스키(가습기), 개스키(개), 스와로브스키”

최근 개그맨 장도연이 출연한 유명 주얼리브랜드 스와로브스키에 등장하는 광고 문구다. 스와로브스키의 6글자 중 끝의 두음절인 ‘스키’를 이용해 만든 광고 문구로 장도연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과 반복 음절이 주는 언어유희가 어울려 젊은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얼리는 ‘우아함’, ‘고급스러움’, ‘아름다움’ 등이었지만 이 광고는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존의 틀을 깨고 B급 감성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큰 호응을 얻었다. 누리꾼들은 “역시 장도연”이라며 끼를 발산한 개그맨 장도연에게 찬사를 보낸 동시에 “주얼리를 개그로 승화시키다니 놀랍다”며 신선한 광고 기획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B급 감성을 담은 충주시의 SNS 홍보 포스터. /사진=충주시
B급 감성을 담은 충주시의 SNS 홍보 포스터. /사진=충주시

반도체기업인 SK하이닉스의 최근 광고 역시 ‘B급 감성’이 물씬 풍긴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이별을 앞둔 듯 서로 애틋하게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해외수출을 앞둔 반도체다. SK하이닉스는 광고에서 반도체를 젊은 남녀로 의인화해 “나 곧 수출돼, 기다리지마”라고 마치 연인에게 이별을 말하듯 엉뚱하게 표현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했다.
이 광고 역시 젊은층에게 호평받았다. 반도체를 의인화한 참신한 기획력과 기업의 글로벌시장 공략 의지를 재밌게 풀었다는 평가다.

이처럼 최근 B급 감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자 여기저기 이를 응용한 콘텐츠가 쏟아졌다. TV광고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공자와 시청자의 소통을 매개로 한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개인방송에 이르기까지 공감을 자아내는 진지함에 유쾌한 장난과 정보를 섞어 시대를 파고들었다.

B급 감성은 1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가 됐다. 어떻게 하면 더 B급으로 부각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이들의 고민은 기가 막힌 결과물로 탄생해 결국 세상의 공감을 자아내고야 만다.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가운데 촌스럽고 독특한 코드지만 의미전달만큼은 확실히 내포된 B급 감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멋’이나 다름없게 됐다.

◆거부감 뚜렷한 기성세대

“처음엔 무슨 삐라인줄 알았다니까요.”

충북 충주에 사는 60대 김모씨는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다 한 게시물을 보고 불온 선전물을 뜻하는 비속어인 ‘삐라’를 떠올렸다. 그는 빨간 바탕의 화면에 웬 중년 남성이 들어가 있고 “옥수수를 털겠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다 뭔가 앞뒤 맥락이 맞지 않다는 느낌이 강해 영락없는 삐라로 확신했다고 회상한다.

곧장 112에 신고하려던 그는 게시물을 좀 더 자세히 바라보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게시물 곳곳에 충주 특산물인 옥수수를 활용한 SNS 이벤트 참여방법을 안내하는 문구로 가득 차있던 것.

그는 “손자에게 뒤늦게 SNS를 배워 종종 이벤트 관련 게시물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황당한 이벤트는 처음 본다. 요새는 이렇게들 사는구나”라며 허탈해 했다.


반도체를 의인화한 SK하이닉스의 광고.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를 의인화한 SK하이닉스의 광고. /사진=SK하이닉스
경기도 수원에 사는 60대 윤모씨도 최근의 트렌드가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흔히 볼 수 있는 시내버스 광고에 맥락을 알 수 없는 글자만 떡하니 써 놓고 아무 설명도 없는 광고가 넘쳐 대체 저게 뭔가 싶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가끔 이해하고 나면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광고 문구나 영상도 있지만 그래도 직관적인 전달력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며 다소 불편해했다.
B급 감성의 주요 소비층은 급변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10~30대 젊은층이다. 이들은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능동적으로 인지하고 빠르게 흡수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어 전파한다. 젊은층에게 B급 감성은 간편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전달력만큼은 확실한 소통의 매개체로 통하기 때문.

반면 김씨나 윤씨 같은 일부 기성세대에겐 그냥 ‘아무말 대잔치’ 취급을 받는다. 기성세대 역시 열심히 유행을 좇던 젊은시절이 있었지만 최근 젊은층에게 통하는 B급 감성 트렌드는 그들에게 따라가기 어렵고 이해하기조차 버거운 철없는 말장난에 불과해 보인다.

이에 대해 사회학 전문가는 ‘의도와 진성성의 차이’라고 진단한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층의 다양한 감각과 감성이 담긴 트렌드를 기성세대가 빨리 이해하고 모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다만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진정성에 일부러 B급 감성을 입혀 표현했느냐, 아니면 진짜 수준이 B급밖에 못 미치느냐에 따라 공감의 깊이가 차이난다”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5호(2019년 3월26일~4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