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Cannes) 크루아제트 해변에서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받은 단편영화 ‘첫여름’의 허가영 감독(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5.21/뉴스1 ⓒ News1 이준성 기자

(칸, 서울=뉴스1) 이준성 장아름 기자 = 제78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섹션에 유일하게 초대받은 작품은 허가영 감독의 단편 영화 '첫여름'이다. 허가영 감독은 베테랑 배우 허진을 주연으로 내세워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첫여름'으로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다. 경쟁 부문 3년 연속 0편이라는 우려 속에 한국영화의 희망이 돼준 그는 "사회의 정상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며 "여성 본연의 입체적인 욕망과 그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허가영 감독은 21일(현지 시각) 제78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Cannes)에서 뉴스1과 만났다.


허 감독은 칸 영화제에 초청된 데 대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여기 와서 프로들과 다 같이 영화도 보고 다른 라시네프 감독들도 만났는데도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제가 영화를 많이 만들어 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첫여름')는 굉장히 각별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있어서, 그리고 다양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게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첫여름'이 초청된 라 시네프 섹션(구 시네파운데이션)은 학생 작품 섹션으로, '첫여름'은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한상준, 이하 코픽) 한국영화아카데미(원장 조근식, 이하 KAFA) 정규과정 41기 졸업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 이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3년째 진출하지 못한 데다, 공식 부문에 한국 장편 영화가 단 한 편도 초대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한국 영화 위기론이 더욱 심화됐던 가운데 '첫여름'의 초청 소식은 반가움을 자아냈다.

제78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Cannes) 크루아제트 해변에서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받은 단편영화 ‘첫여름’의 허가영 감독(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5.21/뉴스1 ⓒ News1 이준성 기자

허 감독은 영화학도는 아니었다. 그는 "경영학과를 나왔고 회사에서 일을 했었는데 어떤 이야기나 창작에 대한 사랑이 있었지만 항상 그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며 "그러다 영화를 한 번이라도 찍어보지 않으면 삶에서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한국 영화 아카데미에 지원을 했고, 아마추어 같은 캠코더로 찍은 7분짜리 영화를 포트폴리오로 냈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해서 영화를 하게 됐다"는 과정을 들려줬다.


허 감독은 "영화도 좋아하지만 사실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도 좋아한다"며 "사실 학부 때 소설이나 시 같은 거를 많이 썼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영화를 하게 된 된 것 같다"며 "현장의 에너지가 저는 너무 좋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제78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Cannes) 크루아제트 해변에서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받은 단편영화 ‘첫여름’의 허가영 감독(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5.21/뉴스1 ⓒ News1 이준성 기자

제78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Cannes) 크루아제트 해변에서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받은 단편영화 ‘첫여름’의 허가영 감독(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5.21/뉴스1 ⓒ News1 이준성 기자

허가영 감독은 노년 여성 이야기를 담은 이유도 언급했다. 그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늘 그런 주제로 글을 써왔다"며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허 감독은 "여성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다"며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국에는 할머니에 대한 통념이 있지 않나, 손주들에게 따뜻한 밥 차려주는 이미지가 있는데 저희 할머니는 차갑고 어떻게 보면 좀 삐뚤어진 그런 모습들이 있으셨다"고 회상했다.

허 감독은 "(외조모는) 항상 자세를 꼿꼿하게 하셨고, 외모를 꾸미시는 정말 멋쟁이셨다"며 "저한테는 정말 밥 한 번을 안 차려주셨다, 매일 밤 마스크 팩을 하고 주무시는데 제가 손녀인데도 단 한 장을 안 나눠주셨다, 왜 우리 할머니는 이렇게 다른 할머니랑 다를까 저 여자는 뭘까 이런 호기심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부 때 노인복지로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할머니를 인터뷰를 해야 되는 과제를 받았는데 그 인터뷰가 제가 그런 노인에 대해서 평생 갖고 왔었던 어떤 관념을 정말 뒤집어엎었다"며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서 그냥 이렇게 뭔가 뭉뚱그려졌던 할머니에게 '개인의 얼굴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이 사람도 정말 여성이고 인간이구나'라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닫게 됐었다,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털어놨다.

허 감독은 자신의 할머니 또한 손녀의 영화를 지지해 줬을 것이라 했다. 그는 "할머니가 돌아가고 만들기 시작했다"며 "2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참 마음이 이상하더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할머니는 이 영화를 지지해 주셨을 것 같다"며 "할머니는 예술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분이고 그것을 끊임없이 표현하려고 하셨다, 이제 제가 그걸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제78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Cannes) 크루아제트 해변에서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받은 단편영화 ‘첫여름’의 허가영 감독(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5.21/뉴스1 ⓒ News1 이준성 기자

칸 영화제 상영에 대한 속내도 전했다. 허가영 감독은 "'첫여름'이 라 시네프 프로그램에서는 제일 마지막에 상영이라서 지금 너무 스트레스받고 있다"며 "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데 계속 긴장돼서 다른 작품들 상영을 해도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올해 한국 장편 영화 초청이 없는 상황에서 칸 영화제에 참석한 소감도 밝혔다. 허가영 감독은 "사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라기에는 작은 단편 영화여서 사실 큰 부담은 없이 잘 즐기고 있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앞으로 영화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으로서의 무게감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한국 영화가 많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조금 더 많아진다"며 "이 축제의 분위기 속에 한국 영화가 없는 것에 대한 속상함과 동시에 '나도 한국 영화인으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에 대한 그런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 감독으로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허가영 감독은 자신에 대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인물의 삶에 가까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는 "또 사회의 정상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며 "그래서 저는 사실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서 노인이 섹스를 하는 이야기 혹은 여성이 여성의 아이를 돌보지 않는 이야기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어떤 불쾌감들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계속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젊은 여성 영화인으로서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언급했다. 허가영 감독은 "한국에서 여성의 삶과 인권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납작하게 표현되는 예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여성의 욕망에 대한 영화들은 아주 억제되거나 혹은 지나치게 분출되거나 그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은데 여성 본연의 입체적인 욕망과 그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사회에 있는 소수자들을 표현해 보고 입체적인 느낌과 정상성에 벗어난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도 싶다"며 "'그 사람들의 삶이 같이 있다'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허가영 감독은 켈리 라이카트, 린 랜지 등 감독들도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남매의 여름밤'을 만드신 윤단비 감독님 팬"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좀 더 많은 여성 롤모델 감독님들이 한국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영화계가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정말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 정도의 위상을 얻고 제가 또 그걸 보면서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장편 영화 계획에 대해서는 "사실 두려운 게 선생님들께 '칸의 저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칸에 갔다 온 감독들이 부담감에 장편을 입봉 잘 못하니까"라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허 감독은 "그래서 저는 빨리 모든 영광을 다 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며 "사실 다작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2년 안에 꼭 장편을 찍어보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