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 (출처: Gene Kornman, 1953,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26년 6월 1일, 세기의 연인 매릴린 먼로(마릴린 먼로)가 출생했다. 본명은 노마 진 모턴슨이다.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정신 질환으로 인해 위탁 가정과 고아원을 전전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어려움은 그의 내면에 불안감과 인정에 대한 갈망을 심어줬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핀업 모델로 활동하며 지금의 금발 이미지를 만들었다. 1940년대 후반 매릴린 먼로라는 예명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코믹한 재능으로 빠르게 주목받았다. '나이아가라'(1953)에서 팜므파탈을 연기했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로 스타덤에 올랐다.


매릴린 먼로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 '7년 만의 외출'(1955)의 상징적인 지하철 환기구 장면, 그리고 골든 글로브상을 안겨준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등 흥행작들을 통해 금발의 섹시 스타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고 싶어 했으며, 이를 위해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 수업을 받기도 했다.

먼로의 사생활은 화려한 명성만큼이나 복잡했다.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와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났으며, 심지어 케네디 대통령 형제와도 염문설이 나돌았다. 이 관계들은 대중의 시선 속에서 사랑과 안정, 지적인 교류에 대한 그의 깊은 열망을 보여줬다.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매릴린 먼로는 불안, 우울증, 약물 남용 등 개인적인 문제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언론의 끊임없는 관심과 스튜디오 시스템의 압박, 그리고 자신의 내재된 불안감은 그에게 막대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1962년 8월 4일, 매릴린 먼로는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발표됐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에 슬픔과 충격을 줬다.그의 사망을 둘러싸고 지금까지도 많은 추측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