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세계유산 종묘 앞 초고층 재개발 공방이 본격화한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 주민 의견을 듣고 정비사업 재추진 의지를 피력했다. 북악산과 남산을 잇는 대규모 녹지 축을 조성해 도심 환경을 대폭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오 시장은 4일 서울 종로구 세운지구에서 간담회를 열고 주민 불편과 요구사항을 청취했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사업 현황을 설명한 뒤 오 시장은 주민 100여명과 생활 불편, 안전 우려, 사업 지연 과정에서의 애로사항 등을 폭넓게 논의했다.
세운지구 재개발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의 핵심 사업이다. 시는 핵심 상가군 공원화와 민간 부지 내 개방형 녹지 조성을 통해 약 13만6000㎡ 규모의 도심 녹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북악산-종묘-남산을 잇는 남북 녹지 축이 조성되면 녹지 확충뿐 아니라 도심 경쟁력 강화 효과도 기대된다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 30년 이상 노후 건축물이 밀집한 세운지구의 안전 취약성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운상가 일대는 1990년대 도심재개발 계획에서 종묘-남산 녹지를 전제로 개발 구상이 제시됐으나 장기간 사업이 정체되며 노후도가 심각해졌다. 현재 세운지구 전체 건축물의 97%가 30년 이상 된 건물로 이 중 57%는 목조 건축물이다.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폭 6m 미만 도로 비율도 65%에 달하는 등 안전 인프라도 열악하다.
영향평가 요구에 주민 반발… "3년 지연 시 금융 부담 150억"
세운지구 고층 개발 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로 서울시와 정부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m로 상향한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경관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이 결정을 문제 삼아 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을 촉구한 상태다.
세계유산 영향평가는 통상 3년이 소요된다.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은 "지금 남아있는 130여 토지주들은 월세 수입이 끊기고 이주대책 비대출금은 이자가 원금에 맞먹을 지경에 이르러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사업 기간이 3년 더 지연되면 150억원 이상 금융비용을 떠안아야 하는데 어느 누가 동의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운4구역은 세계유산 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니 우리 주민들을 설득하지 말라"며 국가유산청의 요구에 반대했다.
오 시장은 노후 도심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만큼 사업 추진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했다. 시는 이번 간담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반영해 정비사업의 병목 지점을 면밀히 점검하고 관계기관과 협력해 사업 추진 일정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세운지구 전반의 ▲노후 인프라 개선 ▲안전 확보 ▲개방형 녹지 조성 등 핵심 과제를 지속 추진하고 주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정비사업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오 시장은 "시는 생태도심으로의 발전을 목표로 지난 2~3년간 3000개 넘는 자투리 공원을 조성해왔다"며 "녹지 공간은 시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지만 실제 생활권 녹지는 여전히 부족하고 구도심은 더 열악하다"고 진단했다.
58년 된 세운상가 정비 기로… "보존과 개발 양립 가능"
세운상가는 준공된 지 58년이 지났다. 오 시장은 "이미 58년 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려면 대규모 재투자가 필요하고 리모델링 없이 시간이 더 지나면 감당할 방법이 없다. 과감하게 투자하든지, 정리하든지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세운지구 개발에 대해 '해괴망측하다'고 표현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게 어떻게 해괴망측한 계획인가"라고 비판했다.
오 시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의견을 달리할 수는 있지만 사업의 의미와 비전을 공유하고 문화재와의 양립 가능성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시는 중앙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중앙정부, 국가유산청, 서울시가 함께하는 3자 협의체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오 시장은 "도시 개발과 국가유산 보존은 양립할 수 있고 두 가치를 조화롭게 유지할 방안을 찾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재생이 아니라 쇠락과 침체, 보존이 아니라 방치의 정책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서울의 심장인 종로에 다시 한번 발전의 숨결을 불어 넣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