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득세와 상속세 비교 표. / 그래픽=강지호 기자

올해 정치권의 핵심 화두 중 하나였던 상속세 개편이 별다른 성과 없이 표류하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세제 정비를 통해 경제 회복 마중물을 마련하자는 취지였지만 국회는 세수 감소 우려, 미흡한 사회적 합의 등을 이유로 개편에 제동을 걸었다.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자본이득세 도입 등 상속세 제도 전반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국 사회가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발 관세 파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치권은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돌파구를 제시했다. 다양한 전략들이 제시됐지만 그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방안 중 하나가 '상속세 개편'이었다. 상속 시 발생하는 세금 부담을 최소화해 우리 기업, 나아가 국가 경제 전반의 활력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제도를 개혁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2025년 세법개정안'이 상당 부분 여야 합의로 수정 의결됐지만 상속세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배우자 상속 공제 확대, 유산 취득세 전환 등을 포함한 초기 개편안들이 논의 과정에서 진전되지 못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배우자 공제 한도 확대도 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이 대통령은 현행 일괄공제 5억원·배우자 공제 5억원을 각각 8억원·10억원으로 확대해 배우자가 18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 대통령은 "집 주인이 사망하고 가족이 남았는데 집이 10억원이 넘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며 "서울 평균 집값 1채 정도 가격이 넘지 않는 선에서는 (상속을 받더라도 살던) 집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해주자"고도 언급했다.

이에 상속세 일괄공제를 총 18억원으로 검토했지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해당 내용을 보류하고 내년에 다시 다루기로 했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세수 감소와 부자 감세 논란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일괄공제 한도를 현재 5억원에서 8억원으로 상향하면 연평균 6169억원의 재정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배우자 공제 확대에 따른 세수 감소는 산출 불가로 제외된 만큼 실제 감세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이었던 유산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하는 것도 무산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 상속세 과세 기준을 '전체 유산'에서 '상속인별 취득액'으로 바꾸는 내용의 상속세·증여세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유산취득세 도입 시 지난해 걷힌 상속세의 약 30%인 세수가 줄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 일부 고소득층에서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온 탓이다. 유산취득세로 전환되면 개인이 실질적으로 물려받는 자산 기준으로 과세가 이뤄지기 때문에 세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정부는 이미 10년 전부터 유산취득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다자녀 가구의 부담을 줄이는 계층 친화적 제도 개편 방안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현행 제도가 글로벌 과세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OECD 24개 상속세 과세국 중 한국과 같은 유산세 방식을 적용한 국가는 미국·영국·덴마크 등 4개국뿐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1년 유산취득세 도입 의지를 밝혔지만, 법안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지난 5월 유산취득세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좌절됐다.

일각에선 단순 개편이 아닌 캐나다·호주·스웨덴·노르웨이가 도입한 자본이득세 등을 통해 근본적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산을 물려주는 상속 시점이 아닌 상속받은 자산을 처분해 이익이 발생한 시점에 그 이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해당 제도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투자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