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사임한 박대준 대표의 후임으로 김범석 의장의 최측근이자 미국 법무 전문가인 해롤드 로저스를 선임했다. 이를 두고 김범석 의장이 국회 청문회 출석을 피하고 법적 대응에 집중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 쿠팡은 박대준 대표이사가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자 해롤드 로저스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을 임시 대표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쿠팡 개인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17일 열리는 청문회에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로저스 신임 대표는 미국 브리검 영 대학교를 거쳐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법률통'이다. 미국 대형 로펌 시들리 오스틴 파트너 변호사와 글로벌 통신기업 밀리콤의 최고 윤리준법책임자를 역임했다. 2020년 1월 쿠팡Inc에 합류한 그는 김범석 의장과 하버드 동문으로 사내에서는 김 의장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복심'이자 2인자로 통한다.
쿠팡 측은 로저스 선임 배경에 대해 "쿠팡의 모회사인 미국 쿠팡 Inc.가 이번 사태를 적극적으로 수습하고, 고객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번 인사는 오는 17일 예정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단행됐다. 국회 과방위는 김범석 의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김 의장은 2015년 국정감사 이후 국회의 출석 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으며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도 불출석해 비판을 받았다.
청문회 앞두고 '최측근' 대표 선임… 김범석 의중은
업계에서는 김 의장이 자신의 '오른팔'인 로저스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본인은 뒤로 물러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미국 본사에서 파견된 로저스 대표가 한국 법인의 공식 수장이 된 만큼, 김 의장 대신 그가 청문회에 출석해 법리적 방어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박대준 전 대표는 지난 현안질의에서 한국 사업 총책임자임에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해 질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로저스 대표 선임이 사태 수습보다는 '법적 리스크 관리'에 방점이 찍힌 인사라고 지적한다. 쿠팡이 한국 실정에 밝지 않은 미국 본사 출신 법률 전문가를 '방패막이'로 세워 까다로운 질의를 피해 가려는 전략을 짰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재 쿠팡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최대 1조원대 과징금 부과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며 대규모 집단소송에도 직면해 있다.
로저스 대표는 선임 발표 직후 사내 메시지를 통해 "이번 사태를 철저히 대응하고 정보보안을 강화해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으나 한국 정서와 동떨어진 법적 대응 위주의 행보는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과방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김 의장이 이번에도 불출석할 경우 강제 구인이나 고발 조치도 검토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김 의장이 해외 체류 중이거나 불출석 사유를 제출할 경우 실질적인 강제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이번 '대리인 파견'이 김 의장의 청문회 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