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미국 투자사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가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의향서를 제출하고 미국 무역대표부에 청원을 넣으며 한국 정부가 쿠팡에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안의 성격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 동일선상에서의 비교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23일 서울시내에 주차된 쿠팡배송 차량. /사진=뉴스1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미국 투자사들의 반발이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가 쿠팡에만 가혹한 제재를 적용했다며 '차별적 탄압'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정부는 향후 동종 사건에서도 법 집행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미국 투자사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22일(현지시각)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ISDS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동시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조사 개시와 관세 등 무역 구제 조치를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했다.


투자사들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이어진 정부와 국회의 대응이 쿠팡을 겨냥한 차별적 대우로 규정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이후 수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이 단행되는 등 반복적인 강제 조사와 사업 활동 전반에 대한 압박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법적 규제를 넘어 특정 정치적 배경 아래 진행된 '미국 기업에 대한 괴롭힘'이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력한 제재와 징벌적 손해배상 현실화를 주문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메시지가 미국 보수층의 대중 견제 정서를 자극하려는 전략적 의도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또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 업무보고에서 "마피아 소탕해서 시장질서 잡을 때의 각오를 갖고 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과도한 대응의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김 총리는 특정 기업을 지목하지 않은 채 금융당국 전반에 시장 질서 확립을 주문했는데 이를 쿠팡과 연결지은 것이다.

'유출'과 '이전'은 별개… 과징금 규모는 쿠팡 매출 때문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가 쿠팡을 탄압하며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경쟁업체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카카오페이의 고객정보 알리페이 싱가포르 이전 사례를 들며 "쿠팡 사건보다 중대하고 피해 규모도 컸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1500만달러 수준의 과징금만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선 두 사안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은 약 3370만건의 고객 데이터를 외부로 노출시킨 '실질적 유출 사고'인 반면 카카오페이는 개인정보 이전을 둘러싼 '법적 해석'에 대한 다툼이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는 애플 서비스에서의 부정 거래 위험을 탐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알리페이의 모델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암호화된 일부 정보가 이전됐다. 카카오페이 측은 이를 개인정보 주체의 별도 동의가 필요 없는 '업무 위수탁' 관계로 판단했다. 반면 당국은 해당 정보 이전을 위수탁이 아닌 '제3자 제공'으로 해석했다.

제재 수위가 낮다는 주장 역시 사실관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카카오페이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공식적인 제재안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처벌이 가볍게 끝난 것이 아니라 절차 자체가 마무리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처벌이 약했다"고 단정 짓는 것은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함께 언급된 SK텔레콤과 업비트 역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동일한 법적 잣대가 쿠팡이라는 거대 플랫폼의 특수성과 맞물려 발생한 결과라서다. 2024년 9월부터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과징금 산정 기준을 '관련 매출'이 아닌 '전체 매출'의 최대 3%로 강화했다. 해당 법령이 적용돼 SK텔레콤에는 약 1348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동일한 법리가 적용됐음에도 쿠팡이 조단위 규모의 과징금이 거론되는 것은 모수가 되는 전체 매출액의 차이 때문이다. 쿠팡의 2025년 3분기 누적 매출은 약 35조6000억원(257억달러)이다. 외부 해킹에 의해 사고가 있었던 과거 사례들과 달리 쿠팡은 '내부 관리 소홀'에 방점이 찍힌다.

부실대응·비협조 논란… 정부 '일관성 유지' 관건

정부 대응이 강경해진 배경에 쿠팡의 부실한 대응과 비협조적인 태도가 자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측은 쿠팡의 초기 대응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상적으로 다른 기업들은 정부나 입법부가 조사에 착수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만 쿠팡은 소통 부족으로 조사 지체를 부르는 등 화를 키운 면이 있다"며 "어느 국가든 행정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버티는 기업에 대해 강도를 높이는 것은 법 집행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향후 국제 분쟁으로 번지더라도 우리 정부가 정당한 행정 절차였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국제법적 관점에서는 우리 정부의 법 집행이 '일관성'을 유지했느냐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될지가 규제의 형평성과 정당성을 가를 관건으로 지목된다.

손동후 SJKP 미국변호사는 "국제법은 일관성 없는 법 집행을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다"며 "SK텔레콤이나 카카오페이 등 과거 사례와 비교했을 때 법 개정 이후 사실상 첫 고강도 제재 사례가 미국 법인인 쿠팡이라는 점은 차별적 타겟팅의 정황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로서는 국적과 무관한 정당한 법 집행임을 입증해야 하겠지만 제재 강도가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면 그 객관성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