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지갑 속에 현금을 채우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언제부턴가 소액이라 하더라도 카드로 결제하는 문화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편의점에서 700원짜리 음료수 한캔을 사도 카드를 내미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신용카드 승인금액은 54조41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4% 증가했다. 이는 2012년 9월(15.7%)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신용카드 승인금액은 43조3300억원, 체크카드 승인금액은 10조93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4.2%, 20.9% 늘었다.

이처럼 카드가 현금을 대체하는 강력한 지불수단으로 떠오른 가운데 여전히 ‘카드결제 사각지대’로 방치되는 곳이 있다. PC방, 지역시장, 포장마차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업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공공연하게 카드결제를 거부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카드결제가 가능하지만 가격적인 측면에서 혜택의 차등화를 둬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분야도 있다. 배달업체의 경우 음식과 함께 제공되는 쿠폰 등을 활용해 고객이 현금으로 결제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카드 안 받아요”

“누가 PC방에서 카드결제를 해줘요? 현금 아니면 안돼요.”
PC방은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대표적인 업권이다. 주로 학생들이 이용하는 탓에 PC방이 자리를 잡던 당시부터 현금결제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기자가 서울시 금천구에 위치한 PC방 10곳을 직접 돌아다닌 결과 카드결제가 가능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왜 카드결제가 불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위와 같은 대답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로 인해 PC방을 이용하는 고객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PC방을 즐겨 찾는다는 A씨(21세)는 “평소에는 체크카드를 이용해 결제하기 때문에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PC방에서는 오직 현금만 받기 때문에 (현금을) 인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수수료가 추가 부담되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토로했다.

지역 시장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 금천구에 위치한 H시장의 경우 시장 내 자리 잡은 가게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카드결제를 거부했다. 실제로 기자가 반찬가게, 생선가게 등을 방문해 카드결제를 시도해봤지만 “카드는 안 받는다”며 모두 거절당했다.

성인이 즐겨 찾는 포장마차도 현금결제가 가능한 곳은 드물다. 서울시 여의도 및 시청 인근에 위치한 포장마차 7곳 중 현금결제가 가능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한 포장마차 주인은 “카드결제는 사업자 등록을 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인데 포장마차 중 사업자 등록을 마친 곳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지역 내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학원도 ‘카드결제 사각지대’로 꼽힌다. 고등학생 자녀 2명을 둔 B씨(48세)는 “두 아이 모두 동네에서 입소문 난 작은 입시학원을 다니는데 카드결제를 받지 않는 탓에 매달 중순쯤에는 미리 현금을 준비해 둬야한다”고 토로했다.

/사진=머니위크 DB
/사진=머니위크 DB

◆“카드결제, 10% 부가세 붙어요”

형식적으로는 카드결제가 가능하지만 가격적으로 차등화해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분야도 있다. 현금으로 계산할 때와 달리 카드로 결제할 경우 과도한 수수료를 물려 실질적으로 현금결제를 강요하는 것이다.
자동차 튜닝업계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튜닝업계는 현금으로 계산할 때와 카드로 결제할 때 수수료를 빌미삼아 다른 금액을 요구한다. 기자가 자동차 튜닝샵 7곳을 방문한 결과 카드결제와 현금결제 시 가격이 동일한 곳은 2곳밖에 없었다. 한 튜닝샵 점주는 “현금으로 결제하면 10% 할인해주겠다”며 현금결제를 유도한 뒤 “자동차 튜닝샵에서 카드로 결제하는 건 어리석은 행위”라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결제금액이 큰 성형외과도 성형부가세를 빌미로 현금결제를 유도한다.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된 미용성형 부가세를 근거로 카드로 결제할 경우 ‘현금결제금액+10%’를 부가세로 요구하는 것. 한 성형외과 상담실장은 “카드나 현금결제 모두 비용은 같지만 카드로 결제하면 부가세 10%가 더 붙는다”고 말했다. 이어 현금과 카드를 혼용해 결제할 수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성형비용을 현금과 카드로 반반씩 결제할 경우에도 카드로 결제한 금액에 대해서는 부가세가 부과된다”며 “가능한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배달업종의 경우 음식과 함께 제공되는 쿠폰을 이용해 교묘하게 현금결제를 강요한다. 예컨대 현금으로 음식값을 지불하는 고객에게는 쿠폰을 제공하는 반면 카드결제 고객에게는 제공하지 않는 식이다. 한 소비자는 “평소 즐겨 찾는 치킨가게의 경우 현금결제를 하는 고객에 한해 쿠폰을 제공한다”며 “결제가격이 같음에도 카드결제 고객에게 쿠폰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실질적으로 현금결제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생계 위한 선택 vs 탈세 목적

이 같은 카드결제 사각지대와 관련해 자영업자들은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소비자단체는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것은 대부분 탈세가 목적”이라고 맞섰다.

한 영세 자영업자는 “영업하는 입장에서 카드로 결제하면 카드수수료에 세금까지 물게 되니 사실상 남는 게 거의 없다”며 “카드결제를 강요하려면 적어도 수수료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추는 게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소비자보호단체는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것은 대부분 탈세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사업자가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이유는 대부분 탈세가 목적”이라며 “사회정의 차원에서라도 세무당국은 신용카드 사용처가 늘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