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우리네 '섬·내·들·길'
덩굴덩굴 영글어가는 가을의 명소 6곳 떠나볼까

전북 남원시 상황마을 다라이논. /사진=한국관광공사(남원시)

땅과 물, 그리고 길에 바삭한 가을볕이 해사하다. 이 계절을 만끽하는 곳은 단풍놀이 떠날 산만이 아니다. 들녘과 가로지르는 길섶, 그리고 바다와 강에서도 온몸으로 완연한 가을맞이를 할 수 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오랜 기다림 탓일까. 봄부터 기다려온 결실은 울긋불긋하면서 향긋하다. 먼 대양에서 찾아온 날것도 풍족한 가을의 한자리를 꿰찬다. 땅과 물의 생것들은 높고 푸른 하늘 아래여서 실하다. 

어디 내놔도 빠질 데 없이 풍족한 시월, ‘수확이 있는 여행’은 땅과 물을 잇는다. 특히 풍족한 길 따라 떠나는 가족여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도울 터. 한국관광공사 10월 추천 가볼 만한 곳은 수확의 기쁨을 덩굴째 누리는 길이다.

◆달큼한 꽃게 속살이 꿀맛… 인천 연평도

가을이면 꽃게 천국인 대연평도. /사진=한국관광공사

가을은 바다에도 온다. 가을이 깊어지자 들과 산에 단풍이 물들 듯 바다 속에도 가을이 익는다. 산란기를 거친 가을 꽃게는 껍데기가 단단해지고 속살이 차오른다. 제철 꽃게는 부드러우면서 달큼해 국물 시원한 꽃게탕으로, 짭조름하고 달콤한 밥도둑 간장게장으로 입맛을 돋군다.

인천항에서 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는 지금 꽃게 천국이다. 우리나라 꽃게의 약 8%를 잡는 곳이다. 이른 아침 바다로 나간 꽃게잡이 배가 점심때쯤 하나둘 돌아오면서 포구는 거대한 꽃게 작업장이 된다. 섬 주민이 모두 손을 보태는 꽃게 작업은 외지인에게 그 자체로 진풍경이다.

조기 파시의 영화를 간직한 조기역사관, 자갈해변과 해안절벽이 절경인 가래칠기해변, 깎아지른 절벽이 영화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빠삐용절벽, 연평해전의 기상과 희생을 추모하는 연평도평화공원, 길이 1㎞의 구리동해변, 골목을 따라 이어진 조기파시탐방로 등 대연평도의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다.

◆그리움 뜨거운 연어의 귀향… 양양 남대천

남대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떼. /사진=한국관광공사(한국수자원관리공단)

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이다. 수확의 계절, 시월엔 이 그리움도 들녘의 이삭처럼 무르익는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세찬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돌아오는 연어의 회귀본능은 어떤 그리움보다 뜨겁다. 강원 양양군 남대천 갈대숲의 은빛이 출렁인다.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온 연어가 산란을 시작하면 남대천 일대는 단풍과 양양연어축제(10월18~21일)로 붉게 달아오른다.

이번 가을여행, 핫 플레이스는 양양이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은 선사시대로 떠나는 타임머신이다. 구석기시대 유적부터 신석기, 철기시대까지 양양의 선사유적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청정 자연과 레포츠를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다. 송이밸리자연휴양림에서 스릴 넘치는 짚라인과 모노레일을 타고 서핑의 성지로 떠오른 죽도해수욕장을 거닐어보자. 양양의 토속 음식인 뚜거리탕과 은어튀김은 양양의 시월 별미다.

◆대추 먹고 사과 따고… 보은 농촌여행

사과 따기 체험을 하는 탐방객들. /사진=한국관광공사(보은군)

가을은 수확의 계절. 대추와 사과로 유명한 충북 보은은 이맘때 가장 분주하다. 농부의 정성이 담긴 대추와 사과를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여행자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보은의 대추는 특별해서 임금님께 진상했다. 아삭하게 씹히는 맛과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싱싱한 대추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보은대추축제가 오는 21일까지 뱃들공원과 속리산 일원에서 열린다. 대추를 맛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수확에 도전해보자.

사과를 수확하는 체험도 가능하다. 사과나무체험학교에 미리 신청하면 빨간 사과를 직접 따는 즐거움을 누린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다. 보은이 대추와 사과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신라 시대 산성인 삼년산성과 소나무 향기 가득한 솔향공원, 한옥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우당고택이 있다. 보은의 농경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보은군농경문화관, 천재 시인 오장환을 기리는 오장환문학관까지 가을만큼 풍성한 보은 여행을 떠나보자.

◆<토지> 배경이 된 들녘… 하동 평사리들판

평사리 들판을 지나는 경운기. /사진=한국관광공사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높고 푸른 하늘은 시나브로 땅으로 내려오면서 떠나는 여름과 몸을 섞는다. 들판의 곡식은 뜨거운 햇볕을 쬐고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누렇게 익어간다. 벼가 고개를 숙이면 완연한 가을이다. 왜 황금빛 들판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경남 하동 평사리들판은 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지다. 고소성에 오르면 소설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자락 형제봉과 구재봉이 들판을 품고 섬진강이 들판 사이를 흐른다. 고소성에서 내려와 평사리들판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부부송을 만난다. 소나무 두 그루는 악양면의 상징이자 수호신이다. 가을바람이 황금 들판을 밟고 걸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사리들판 여행에는 쉼터가 많다. 드넓은 다원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리는 매암차문화박물관, 벽화가 재미있는 하덕마을 골목길갤러리 ‘섬등’에 들러보자. 하동레일파크에서 코스모스 꽃밭 사이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을을 만끽해도 좋다.

◆캐는 족족 ‘가을’… 여주 고구마 수확체험

넓은들녹색농촌체험마을 고구마 수확 체험. /사진=한국관광공사

가을은 가족 나들이에 적기다. 남한강이 몰아온 토사로 고구마가 풍년인 경기 여주. 가족과 고구마를 캐는 아이들의 호미질이 예사롭지 않다. 땅속에서 보물을 찾듯 튼실하게 자란 고구마를 줄줄이 캐내다 보면 마음까지 풍성해진다. 여주는 예전에 밤고구마가 유명했다. 지금은 일명 ‘꿀고구마’라 하는 베니하루카 품종이 인기다. 특히 수확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이 달고 고소하다.

여주 넓은들녹색농촌체험마을은 고구마 캐기를 비롯해 고구마묵 만들기, 떡케이크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구마 캐기 체험(1인당 7000원)은 수확한 고구마(2㎏)를 가져갈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 여주여행이 가능하다. 여주역까지 경강선(전철)이 개통돼서다. 인근 여행지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세종 영릉과 효종 영릉, 휴대전화의 역사와 변천사를 한눈에 담는 여주시립폰박물관, 이웃한 금은모래강변공원, 쇼핑 보따리가 한가득한 여주프리미엄아웃렛이 있다.

◆두발이 전하는 가을노래… 남원 지리산둘레길

배넘이재에서 바라본 장항마을. /사진=한국관광공사

길에서 가을을 만난다. 타박타박 걷기 좋은 계절, 길 따라 가을의 노래가 펼쳐지는 지리산둘레길로 가보자. 용광로보다 뜨거운 여름을 온몸으로 견뎌낸 농작물은 흙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수확의 계절, 지리산둘레길의 가을은 도리어 푸르디푸르다.

지리산둘레길은 산의 규모처럼 길다. 3개도(전남·북, 경남), 5개시·군(남원·구례·하동·산청·함양), 21개 읍·면과 120여개 마을을 잇는 장장 295㎞ 걷기여행길이다. 이 중 전북 남원시 인월센터를 출발하는 인월-금계 구간(20.5㎞)은 보석처럼 빛나는 비경을 품었다. 저녁노을보다 붉게 익은 고추,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다랑논에서 황금빛으로 춤추는 벼, 건넛마을로 향하는 촌로의 느린 걸음이 황소를 닮았다.

인월-금계 구간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단일 사찰 중 가장 많은 보물을 간직한 실상사, ‘지리산 속 석굴암’ 서암정사도 들러보자. 인월전통시장 구경은 덤이다. 걷지 않았다면 몰랐을 진짜 가을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 본 기사는 <머니S> 제562호(2018년 10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