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거대한 발걸음, 중국






중국어과, 중국음식, 중국영화, 중국문화. 배워라 배워라. 무엇이든지 배우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3개국어는 기본이야~하면서 영어다음으로 급부상하는 것은 중국어. 중국시장이 개방되면서 13억의 시장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최근한국의 정치나 경제 전반을 둘러볼 때 극심한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한 예비사회인들의 필수과목이 바로 중국어라는 것. 또한 엄청난 13억 중국인의 무게 - 중국사람 다같이 발을 구르면 지구가 무너질거란 소리, 귀에 꽂히게 듣는 속담아닌 속담이라는 것. 귀에 못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기초상식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시작해볼까.

 




[한중일 문화탐방] 다가오는 거대한 발걸음, 중국



 

2003년을 뒤돌아보며 중국인들이 가장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건 바로 매염방과 장국영의 사망.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배우 - 신조협려, 반생연, 연분 등 - 겸 인기가수 메이옌팡(매염방)의 죽음은 가슴아픈 현실이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살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자궁경부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돈 이후 그녀는 스스로 자궁경부암에 걸렸다고 털어 놓았고, 이후 영화와 TV 출연을 자제하며 투병해 왔으며 암 투병 소식을 접한 팬들은 모자를 쓰고 외출하는 그녀에게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왔다고.



 

사망 전 그녀는 '애니타 무이의 클래식 기념 콘서트'를 가졌으며, 당시 홍콩 콜리시엄 극장에서 열린 무대에 결혼예복 차림으로 나와 '평생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 무대를 내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사랑하는 홍콩 팬들과 더불어 전세계에 있는 그녀의 팬들과 함께 혼인을 한 셈이다. 성룡은 장국영 투신자살에 이어 매염방까지 암으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올해는 홍콩 연예계로서는 불행한 한 해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좀 지난 사건이지만 말 나온김에 다시한번 되돌아볼까. 장국영(Leslie Cheung). 그가 단지 남자친구를 좋아한다는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지구상의 여성들이 눈물을 쏟았던가. 1956년생. 올해 그가 살아있었다면 마흔여덞번째 생일을 맞았을 테지만... 그의 앳된 얼굴. 누가 감히 쉬흔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생각하리오. - 울 엄마 뻘인 그를 오빠라고 생각했다. - 그는 1976년 홍콩 ATV가 주최한 음악 콘테스트에서 2등으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한뒤 1989년 가요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모니카》《당년정》등의 노래로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고, 1987년에는 앨범 《서머 로맨스》로 홍콩 텔레비전 '올해의 최우수 앨범 판매량' 대상을 받았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는 성월동화, 친니친니, 해피투게더, 야반가성, 영웅본색2, 천녀유혼, 동사서독, 색정남녀, 종횡사해, 풍월, 패왕별희, 마지막을 장식한 이도공간 등등등 엄청나게 많았었다. 오히려 우리네 사람들에게는 그의 골수팬을 제외하고는 가수라기보다 영화배우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한 때 엄청나게 많은 홍콩영화를 섭렵했던 터라 - 하루에 비디오 일곱 개 본 사람이 있으신가. 그 중 대여섯개가 홍콩영화였다면 장하지 않은가. - 앞에서 언급한 모든 영화를 두루보았으니. 그 중 최고로 뽑는 것이 있다면 단연 그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보여준 역대 예술영화 중 작품 중의 작품으로 꼽는 패왕별희라는 것. 패왕별희를 보고, 듣고, 느꼈던 사람들 중의 그를 가히 칭찬하지 않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중국의 경극문화를 우리나라에 한 방에 - 정말 한 방이라고 칭할 만하다. 경극을 알고 있는 사람 중 대다수는 패왕별희에서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전하므로. - 알렸던 당대 최고의 영화. 그 영화에서 그는 여자역을 맡은 경극배우를 너무나 잘 소화해냈었다. 그런 그가. 아름다웠던 그가 2003년 4월 1일 홍콩의 한 호텔에서 투신자살하다니, 홍콩 전역이 울만한 사건이었다.



 

여담이지만, 그의 마지막 유작《이도공간》은 여름을 달래주는 공포영화로, 사실 그리 흥행하지는 못하였다. 공포영화는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기 때문에. . . 못 보는 사람은 죽어도 못보는게 공포영화이므로. 《이도공간》을 상영할 당시, 많은 관객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인기는 가히 짐작할 만 하였다. 관객퇴장로에 붙여놓은 커다란 배너와, 포스터 곳곳에는 영화 상영후 눈물을 흘리며 나온 관객들이 붙여놓은 포스트잍, 혹은 작은 메모지,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국화꽃송이 들이 배너 철거 직전까지 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주었다. 내용인 즉슨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연인입니다.」「I'll always love you - 외국인이 붙여놓은 듯함. 나머지는 해석불가@_@;;;; 직접 본 스탭의 얘기로는 외국인 남자라고 함」등등의 애도와 사랑고백 등이었다.



 

중국에 갔다가 장국영의 앨범을 사려고 레코드점에 갔을 때만해도 그가 난데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고는 생각못했는데. 중국어를 잘 못해 張國英이라는 세 글자만 가지고(저것도 실제로 그가 저 이름자를 썼는지도 모르고 단지 한국말로 읽으면 장국영이기에 썼던 것)보여만 줘도 점원들이 다투어 그의 앨범을 내밀었었다. 그만큼 그의 인지도가 높았음에도 그는 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를 사랑하는 홍콩을 버리고 갔을까.



 

연예인은 공인으로 수많은 팬들과 수많은 역사를 함께하기에 그들의 죽음은 참으로 여러사람을 가슴아프게 한다. 일본음악의 한 줄기를 이루었던 - 한 때 엄청난 자살소동을 빚었던 - X-JAPAN의 히데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이 두사건 역시 전세계 그와 그녀의 추종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을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

 




[한중일 문화탐방] 다가오는 거대한 발걸음, 중국



 

이제 아픔을 뒤로하고, 좀 전에 잠시 꺼냈던 패왕별희얘기로 화제를 바꿔보자. 패왕별희, 즉 중국의 공연문화 중 제일로 손꼽는 것이 바로 경극. 실로 놀라운 것은 경극의 화려한 무대의상이나 분장도 그러하겠으나 경극배우들의 음역이다.

 

여자도 소화하기 힘든 고음의 뮤지컬을 남자배우로만 엄선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경극. 그러나 이러한 경극보다 더 놀랍고 더욱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사천 지방 특유의 경극인 변검술인 것이다.



 

변검술은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재빨리 얼굴에 쓴 가면을 다른 가면으로 바꿔쓰는 것으로 변검의 달인은 열걸음을 걷는 동안 백개의 가면을 바꿔쓸수 있다고 한다. 대단해요~



 

변검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실로 하는 방법은 『차검』 이라는 것으로 이는 비교적 복잡한 변검 방법이다. 사전에 미리 가면을 비단에 한 장 한 장 그린 다음 그것을 잘 잘라서 각각의 가면마다 실을 연결하여 그것을 얼굴에 한 장씩 붙인다. 그리고 그 실을 손이 가기 쉬우면서도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는 곳(의복의 어느 한 곳, 예를 들면 허리띠나 옷소매 등)에 연결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춤동작 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 다음 그것을 한 장씩 떼어낸다. 그러나 이는 맨 얼굴에 가면을 씌우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어려우니 과연 그 비법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변검이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영화소개. The King Of Masks - 변검 - 이라는 제목의 1995년작 영화를 보시면 좋겠다. 투르케스탄(Turkestan)불 국제영화제 골든튤립(Golden Tulip)상, 감독상,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아동영화제 영화대상, 최우수감독상, 최우수여우주연상, 제16차 금계장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 작품은 완숙한 표현 기교와 독특한 구상, 사실적 연기 등으로 각계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변검, 그 방법에 대해 사람들은 무지하게 궁금해한다. 작은 동전 마술 하나만 보더라도 그 기교가 궁금하여 여기저기 캐묻는데 이 변검이라는 것은 자신의 수제자, 그것도 남자가 아니라면 절대 자기 가족들이라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니. 정 알고 싶은 사람은 사천지방에 가서 변검인의 수제자로 들어가보시길. 그러나 비밀은 어디까지나 비밀이어야 아름다운것인데 중국 사천지방만의 비책일지라도 수세기를 거쳐오면서 이미 외국인에게도 그 비밀이 전수 되었으니 고유의 문화적 비법이 새나간 것에 대해 약간은 아쉬운 감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로 치면 '장인' 인 변검인들이 아무리 신기에 가까운 변검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술을 전수해 줄 제자가 없다는 것에 통탄할 일이다. 변검 뿐 아니라 경극의 모든 면은 여자역할까지도 남자가 소화해야하는 것이 중국의 옛 남존여비 사상 때문인 것은 알지만 그 기술을 여자에게도 전수한다면 잊혀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을 논하면서 식문화를 빼 놓을 수 없다는 것은 어린이들도 아는 사실. 필시 여러분들은 근처의 어마어마하게 널려있는 중국집에서 한 달중 몇끼는 해결하실것으로 보며, 또 하나 중국음식의 다채로운 재료와 그 맛은 뭐라고 말로 간단하게 해치울 문제가 아니므로 말 그대로 음식 보다는 문화에 치중하여 필자가 중국여행중 겪었던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중국학교에서 배웠던 것 중에 전통민요 비슷한 한가지가 있었는데 이는 모두가 아는 기정사실로써 「중국인은 두 발로 걷는 것 중에는 사람, 네 발 달린 것 중에는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라는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안나지만 대충 이런내용이었다- 이것이 보통 구전되는 속담이나 통설이 아닌 노래였다니. 매우 놀랍다.

 




[한중일 문화탐방] 다가오는 거대한 발걸음, 중국



 

한국 사람이 중국에 가면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중국음식이 엄청나게 맛있다며 젓가락 놓을 새 없이 먹는 사람, 향채냄새때문에 손도 못대고 살빠져 오는 사람.

 

필자는 입이 짧은 관계로 안타깝게 후자에 속했다. 이 향채라는 것은 한국이름으로 ‘빈대풀’이라 하는 것으로 뭐 빈대태운냄새는 맡아본적 없으나 대충 빈대태운냄새와 비슷하다 하여 빈대풀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못 먹는 사람은 죽어도 못먹는다. 심지어 라면에까지 향채가 뿌려져 있어 라면이라도 먹고 살려고 했다가 무지고생했다. 중국여행을 가도 이 향채란 놈을 못 먹을 것 같은 사람은 꼭 음식점에 가서 “워 뿌야오 샹차이”라고 말할 것.



 

그러나 뒤늦게 중국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느낀 것은 바로 사천요리 때문이다. 한국사람 대부분은 사천요리에서 매력을 느끼는데, 사천지방은 산악지대로써 향신료, 소금절이, 건조시킨것이 특징이다. 요리는 얼얼하게 매우며 강한 향기가 있어 우리나라 음식과 약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중국인들은 회전이 가능한 동그란 식탁에 한 가지 요리를 한 접시에 모두담아 원탁을 돌려가며 나누어 먹는다. 이는 사교와 친목도모를 위한 전통이다. 정말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맞다.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기름진 것들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살찐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 비법은 13억 중국인의 원동력인 부지런함이 아닐까.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우리의 경우 음식은 물과 같이 먹는데 반하여 그들은 항상 술과 같이 한다는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끼니때 상관없이 맥주와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 술과 밥을 같이 못 먹는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한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맥주가 곧 음료이다. 그래도 토마토와 밥, 수박과 밥을 먹는 사람도 많다. 기숙사 생활때 중국학생들이 반찬으로 설탕에 절인 토마토, 설탕뿌린 수박을 먹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 . oops~!- 보통 무난하게 고량주보다는 맥주와 같이 먹는데, 맥주라고 무시하면 안될 것이 우리나라에서 겨우 4.5%정도의 알콜 도수를 지닌 맥주는 찾아볼 수 없다. 기본이 15%정도로, 운남에서 유학온 친구말로는 운남성이나 호남성 사람들의 맥주는 기본이 40~50%에 달한다고 한다. - 덕분에 하루종일 술에 취해 다닌 것이 기억난다.



 

웬만한 요리집에 가면 뱀이 철창안에서 가격표를 달고 또아리 틀고 있는가 하면, 엄지손가락만한 하얗고 통통한 벌레들이 꼬치에 잔뜩끼워져 있고,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꼬치에 끼워먹는 병아리 등이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손가락으로 잘못 가리켰다간 종업원이 그대로 그녀석을 당신의 식탁에 올릴 수도 있으니 주의. 그렇다고 중국의 식문화를 혐오스럽다거나 비방하는 것은 아니다.

 

먹지 못하여 그 맛은 추측하지 못하나 엄청나게 맛있을지 어떻게 아는가.





 

마지막으로 요리집에서 본 진풍경은 만주족의 전통복장이었던 치파오이다. 청나라때 전국적으로 유행되기 시작하여 현재 중국의 전통복장으로 되어 있는데 원통형으로 다리 옆부분이 갈라지고 앞에는 단추가 달려 있으며, 칼라가 목부분을 둘러싸고 있다. 다시 쉽게 설명하자면 스트리트 파이터에 나오는 춘리의 복장이다. 흔히 말하는 차이나칼라에 금자수를 놓은 발목까지 오는 긴 원피스이다. 그러나 양 옆이 엉덩이 약간 아래까지 갈라져 있어 상당히 민망한 옷이다. 특히 의자에 앉을때나 바람이 불 때는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 지 모르는 옷이지만 매우 아름답다. 실용성이 없어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입고 있는 중국인을 보기가 어렵지만 고급식당의 종업원과 쇼장의 안내원들은 많이 착용하고 있다. 중국에 간다면 한 벌쯤 구입해보는 것도 여성분들에게는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다.





 

중국이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 - 너무 식상한 수식어지만 사실인걸 - 지금은 고구려사때문에 약간의 분쟁이 있으며 최근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으로 세계 물류유통량을 조금씩 빼앗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마어마한 중국의 소비자들을 이용하여 기회의 땅을 만들수도, 혹은 오랜역사를 거슬러 중국에 조공이나 공녀를 바쳤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시장을 잠식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나랏님도 알아야 해먹듯이. 단지 중국말만 딸딸 배울것이 아니라 중국인, 중국이라는 나라, 중국문화에 다시 한번 눈길을 줘 보자.



 

임성주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