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브로깡은 옛날 얘기예요. 제일 잘 나가는 건 아무래도 값이 비싼 최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고, 최근엔 사설 휴대폰 보험 사기까지 등장했다니까요.”
 
최근 '와이브로깡' 적발 이후 휴대폰 판매 현장에서 만난 한 대리점주의 얘기다. 와이브로깡, 스마트폰깡, 아이패드깡 등 각양각색의 신종 ‘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같은 깡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지만 통신사 입장에서도 손해가 막심하다. 이번에 적발된 와이브로깡의 사례만 하더라도 KT는 107억원, SKT는 36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유독 통신기기들을 대상으로 신종깡이나 사기 행각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통신사 대리점주들이 말하는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이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통신사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 "남는 거 없는" 대리점이 위험한 결탁...실적압박 때문?
 
#1. 통신보증보험대출이란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일 갤럭시S3를 개통해서 자기네에 넘겨주면 오백만원까지 대출을 해준다고요. 돈은 꼭 필요한데 미심쩍기는 하고, 그런 조건의 대출도 있나요?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같은 대출 광고는 ‘100% 사기’다.
 
간단히 구조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통신사 대리점들은 통신기기를 판매하게 되면 기기에 따라 20만원 안팎의 보조금을 지급 받는다. 대리점은 이 보조금과 허위로 가입신청을 하고 지급 받은 기기를 미리 결탁한 불법대출업자나 브로커에게 넘겨준다. 불법대출업체는 소액 대출자를 모집하고 이들에게 보조금의 일부를 즉시 현금으로 지급한다. 
 
이 과정에서 남게 된 스마트폰 등 기기는 어떻게 될까. 소비자 명의를 도용해 허위 가입한 기기는 대부분 불법대출업자나 브로커에 의해 해외로 팔아 넘겨지기 일쑤. 이 기기값이 불법대출업자나 브로커의 수익이 되는 셈이다. 대리점에서 소액대출자의 명의를 도용해 허위로 가입된 기기의 할부값은 차후 소액대출자에게 떠넘겨진다. 
 
서울 용산 인근에서 통신사 대리점을 운영 중인 한 점주는 “사실 대리점 입장에서는 통신사에게 지급받은 보조금과 기기를 대출업자에게 다 넘겨주기 때문에 수익이 남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리점은 왜 이처럼 불법대출업자와 위험한 결탁을 하는 것일까. 취재 중 만난 대리점주들은 하나같이 통신사의 ‘판매 실적 압박’을 이유로 들었다. 
 
한 대리점주는 “판매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보조금 지원 등이 줄어들고 가게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때문에 몇몇 대리점에서는 가입자 정보를 한 사람 당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에 거래하는 경우도 봤다”고 실상을 귀띔했다.
 
또 다른 대리점주는 “최근에는 이를 활용한 사설 보험 사기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통상 통신사 보험에 가입할 경우 기기고장이나 분실시 20만원~30만원 정도의 자기부담금을 내게 된다. 그런데 브로커들은 일종의 사설 보험이라고 속이고, 이보다 적은 15만원 정도에 새것과 같은 폰으로 바꿔주겠다고 소비자들을 꼬이는 것이다. 이때 부서진 폰 대신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새 폰’의 정체가 바로 분실폰이나 명의 도용을 통해 허위로 신고된 기기들이다. 
 
그는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불법대출업자와 브로커, 여기에 가담한 일부 대리점이 가장 크다"면서도 “하지만 당장 판매 실적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된 통신사들이 이 같은 상황을 방관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 통신사 “한 대당 수백만원 피해…모니터링 강화”  
 
그러나 이에 대해 통신사 측도 할 말이 많다. 일부 판매점과 대리점에서 실제 이 같은 ‘깡’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데 대해 인정을 하지만,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인 만큼 통신업체도 피해자라는 것이다. 
 
KT 관계자는 “고가의 기기를 할부를 통해 쉽게 구입하고 차후에 나눠 기기 값을 지불하는 방식 때문에 통신기기에 유독 신종 깡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면서도 “작정하고 불법을 벌이는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지 않느냐”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당장 신종 깡이 기승을 부릴수록 손실이 커지는 쪽은 통신업체란 하소연이다. 기기값만 계산하더라도 손실이 한대당 100만원이 넘어선다는 것. 더욱이 스마트폰 같은 경우 가입 후 3~4개월이 지나야 비정상개통인지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통신업체가 손실로 떠안고 있다는 항변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기기 값이나 미납 요금 등 눈에 보이는 경제적 손실 외에도 회사이미지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도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휴대폰 기기의 특성상 개통 당시에 바로 파악이 어려워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판매 실적 압박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대리점주들의 주장에 대해 통신업체들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최근 유사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통신업체들 또한 대리점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추세다. 현재 통신3사는 모두 대리점의 비정상개통을 걸러내기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KT는 워치독 프로그램을, SK텔레콤은 SKT FDS와 SKT CIA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LG유플러스는 워치타워라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 대리점에서 섣불리 허위 가입자를 유치했다가 적발되면 대리점의 고의성 여부를 따져 영업정지나 폐업 등 강한 제재를 가한다는 설명이다.
 
SKT 관계자는 “유령개통 단말기는 해당 대리점의 판매 실적으로 잡히지도 않는다”며 “판매 실적을 높이려고 가입자 정보를 거래한다는 건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답했다. 대리점주들이 불법 행위에 가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판매점에서 대리점주들의 눈을 속여 허위 가입자를 대량 유치한 뒤 '먹튀'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통신사의 과도한 보조금 마케팅과 할부 판매 방식이 불법 깡에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통신3사 모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당장 이와 관련한 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보조금 지원보다는 할부 판매 방식이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경우에 따라 일부 단말기의 할부 구입을 제한하는 등의 개선책을 고심 중이다”고 밝혔다.
 
SKT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해 시스템을 마련하고 적발 대리점에게는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일부 판매점이나 대리점의 사례로 인해 전체 대리점에 대한 소비자 오해나 불신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