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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의 커다란 도화지와 매일매일 새로운 빛 그림
아주 단순하다. 갈대밭과 갯벌 그리고 철새가 순천만의 전부다.
키를 넘기는 갈대밭은 바람을 따라 '휘휘~' 한번씩 소리를 낸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이 최상의 생육 조건인 만큼, 이곳 순천만의 갈대는 노란색 풍요로움을 자랑하며 약 30만평에 걸쳐 펼쳐져 있다.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도 대단한 감탄사나 흥미진진한 놀 거리를 즐기지 않는다. 기념사진을 찍는 셔터소리와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산책길의 한가로움이 있을 뿐이다. 나무 데크가 놓인 길을 따라가며 즐기는 갈대 사이로 부는 바람은 차갑지만 아직은 상쾌한 정도다.
갈대밭을 지나 오르는 곳은 용산전망대. 이곳의 백미라는 ‘순천만 S라인’을 보기 위함이다. 이곳 용산은 가볍게 오르기 좋은, 소박한 구릉 정도다. 소나무들의 서열을 받으며 천천히 올라 전망대에 도착하면 이제는 조금 더 거칠어진 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질 것이다.
전망대 계단에 오른 여행자들이 한결같이 터트리는 첫마디는 그저 짧은 외마디. ‘아…!’ 그러고선 잠시 말을 멈춘다.
690만평 광활한 갯벌에 커다란 S자를 그리며 펼쳐진 수로로 조그만 배 한 척이 한가로운 뱃길만큼이나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오늘의 마지막 운행을 하고 있는 생태체험 선이다.
낙조를 앞둔 태양은 보다 날카로워진 빛을 뿌리기 시작한다. 대자연의 ‘드로잉쇼’는 이제부터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도화지를 바탕으로 그날의 바람과 빛에 따라 다채로운 그림이 만들어진다. 겨울 해넘이 직전의 순천만 갯벌은 흑백사진 위로 내려앉는 다이아몬드 빛의 반짝임이다. 여름에 느낄 수 있는 오색의 낭만적인 풍광이라기보다는 장중하지만 가장 호사스럽고 화려한, ‘그레이 스케일’의 환타지다.
잠시 동안 빛과 바람, 정적을 즐겨보자. 시끄러운 도시에서 굳이 순천만까지 찾아 왔다면 바로 이 순간이 하이라이트가 아닐는지…. 아무도 없는 듯한 이 고요함 속에서 잠깐은 내 자신과 고요한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새해, 첫 달이니만큼 자기가 믿는 신에게 소원을 빌어봐도 좋겠다.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저 생각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도 관계없다. 애써서 무엇을 깨달을 필요도 없다. 감동에 동참하지 않아도, 몸을 감싸는 공기와 받고 있는 태양빛 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일 테니.
태양은 보다 빠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해가 온전히 내려올 때까지 그 시간을 즐길지, 갈대 숲 사이에서 해지는 풍경을 즐길지 여부는 각자의 취향에게 질문하면 될 일이다. 겨울은 해넘이 이후 빛이 남아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만 유의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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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을 가장한 치열한 삶의 현장
전망대에 오르기 전, 빛이 한참일 때는 자연생태관에 들르거나 생태체험선을 타보자. ‘철새도래지’로 잘 알려진 순천만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흑두루미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재두루미, 저어새, 황새, 홀부리오리, 민물도요 등이 이곳을 주소지로 한 철새들이다.
이들이 굳이 순천만에 오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천혜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만큼 순천만이 생태환경적으로 우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갈대와 갯벌의 자연정화는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고, 따라 할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산물일 뿐 아니라, 철새의 먹이가 되는 칠면초나 주변의 논, 습지 등의 풍부한 영양소는 새들에게 더 없이 좋은 생육 환경이다. 굳이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지정됐다는 타이틀을 말하지 않더라도 매년 찾아오는 철새들이 이곳의 경관과 공기와 함께 우수한 자연조건을 증명하고 있다.
생태체험선은 가장 게으르고 손쉽게 순천만과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비법이다. 단 35분 만에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눈으로는 새를 보고 몸으로는 습지의 바람과 물을 즐기다 보면 가장 짧은 시간에 이곳의 매력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곳 순천만이 자랑하는 흑두루미와 검은머리갈매기는 세계 전 개체의 약 1%가 서식한다고 하니 순천만에 갈 때는 한번쯤 행운을 기대해 보자.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보면 3년 재수가 좋다’고도 하고, 공룡시대부터 생존해 온 만큼 동양에서는 전통적인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눈을 크게 뜨고 시원하게 비상하는 두루미를 찾아보자. 단, 조용한 환경에서만 안정을 찾는 이들이니 세심한 배려와 조용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에서는 갈대열차, 순천만천문대, 생태탐조투어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자녀와 함께 여행을 계획한다면 미리 사이트를 둘러보고 적당한 코스를 정하는 것도 좋겠다.
◆제철에 맛보는 정성 가득한 꼬막 한 상
겨울에 이 지역에 왔다면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이 ‘꼬막’이다. 10월부터 5월이 제철이다. 그 중에서도 한겨울에 그 맛이 특별하다. 이 작은 조개를 채취하고, 씻고, 조리하는 모든 과정에서 아낙들의 수고를 빼놓을 수 없으니 꼬막 맛의 8할은 정성이 아닐까 싶다.
순천과 보성읍 일대에 가면 어디서나 꼬막 식당을 만날 수 있는데, 뭐니뭐니 해도 현지음식의 위엄을 느끼고 싶다면 벌교로 이동해 보자. ‘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벌교는 힘 꽤나 쓴다는 사내들과 조정래의 ‘태백산맥’, 그리고 꼬막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묘하게 연관성을 지닌다. 소설 ‘태백산맥’에 힘쓰는 사내들과 꼬막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는 점, 꼬막의 풍부한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힘 좋은 남자들을 만들었다는 설 등으로 이들 간의 고리는 유난히 밀착돼 보인다.
어쨌든 담백하고 쫄깃한 꼬막이 여자나 남자 모두에게 좋은 음식임은 틀림없다. 제철에 왔으니 빠트려서는 안되는 코스임이 자명한 일. 벌교 시내에서 마음에 드는 꼬막식당에 들어서면 꼬막정식이 있을 것이다. 멀리서 왔으니 크게 한 상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
꼬막 정식은 그야말로 꼬막의 향연이다. 꼬막찜은 기본이고 구이, 전, 숙회, 꼬치, 비빔밥 등 다양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하나씩 맛보다 보면 어느새 여행의 피로는 사라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솟는다. 쫄깃한 식감이지만 질기지 않고, 입 속에서 잠시 씹히는가 싶지만 어느새 또 한 입…. 버겁게 느껴졌던 한 상이 스리슬쩍 비워지고, 심신은 뿌듯함으로 차오를 것이다.
이처럼 벌교 꼬막이 특별한 이유는 생육조건 때문이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만나는 벌교 앞바다의 여자만 갯벌은 깨끗한데다 모래가 섞이지 않아 꼬막에겐 최고다. 그러고 보니 여행지로 택했던 순천만과도 환경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이 일대가 오염되지 않는 청정지역이라는 뜻이다.
순천만에서 마음을 씻고, 꼬막으로 힘을 채웠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 또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여행정보]
<순천만 가는 방법>
승용차
서울 -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익산포항고속도로 - 순천완주고속도로 - 동순천 IC에서 ‘여수 광양항’ 방면으로 좌측 - 신대교차로에서 우측 - 영암순천고속도로 해룡교차로 - 순천만 IC - 녹색로 - 인월사거리에서 ‘월평·순천만’ 방면 - 순천만길
대중교통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 - 순천종합버스터미널 - 67번 버스 - 순천만 정류장
<순천만에서 벌교 가는 방법>
승용차
순천만길 - 인월사거리 - 녹색로 - 벌교방면 - 신정길 - 벌교읍
대중교통
1. 버스
67번 버스 - 63번 버스 (제일고·외장 방면) - 청암대학 하차 - 벌교 낙안 버스 - 소화다리 정류장 하차
2. 기차
67번 버스 - 중앙초등학교 정류장 하차 - 235m 걷기 - 순천역 - 벌교역 - 벌교읍으로 약 700m 이동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매표시간 09:00~21:00(일몰후는 생태관·천문대 관람객만 매표)
휴관 : 매주 월요일, 국경일의 경우 그 다음날, 설 및 추석 연휴, 기타 시장이 정한 날
입장료 : 성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자세한 정보는 해당 사이트(http://www.suncheonbay.go.kr) 이용
<숙소>
1. 순천시내와 순천만 주변 : 순천만 주변으로 펜션과 민박집이 많이 있고 순천시내에도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해 호텔, 모텔, 펜션 등 여러 형태의 숙박시설이 많이 있다.
2. 순천만과 벌교 사이에 하룻밤 머물기를 계획하고, 색다른 숙박을 원한다면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권한다. 두 장소 사이에 경유하기 좋은 곳이고 옛 성읍에 초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성 안팎으로 40여채의 한옥을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있으니 해당 사이트(http://www.nagan.or.kr/)에 접속해 마음에 드는 곳을 예약하면 된다. 요즘은 난방·온수·에어컨 시설을 갖춘 한옥들이 많아 필요와 체험의 강도에 맞게 선택하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음식 >
1. 벌교읍 꼬막 전문식당
거시기 꼬막식당 : 061-858-2255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871-8 / 가격 1만~2만원
태백산맥 현부자네 꼬막정식 : 061-857-7737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383-1 / 가격 1만2000~2만원
2. 순천시내 돼지국밥
이 지역 별미 중 돼지국밥이 있는데 흔히 알려진 돼지국밥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맑은 국물에 콩나물과 고기를 아낌없이 사용해 깔끔하고 칼칼하면서도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맛으로 웃장 내 돼지국밥 골목이 유명하다. 제일식당 : 061-753-4655 전라남도 순천시 동외동 웃장 내 위치 / 가격 6000~1만5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