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안녕하다'는 상대방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인사다. 그런데 최근 유행처럼 확산된 안녕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우리에게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기보다는 앞으로 안녕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녹아 있다.
그리고 관심은 곧 '민영화'에 쏠린다. '안녕들 하십니까'는 고려대학교 주현우씨(27)가 철도파업 등 사회현안에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면서 비롯됐다. 그리고 민영화 논란이 정치와 경제, 사회까지 화마처럼 번졌다.
대자보에는 "철도민영화로 인한 철도파업. 그분들을 보면서 부끄럽게도 저는 안녕했습니다. 그리고 곧 의료보험 민영화.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데 몇 십만원씩 내야 합니다. 이때도 안녕할 수 있을까요?"라며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안녕이 주는 메시지. 철도·의료민영화의 현황과 대안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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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아니다" vs "단계적 민영화"
철도·의료민영화 논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민영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고 이명박 정권에도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슈다. 하지만 반대여론이 너무 거세 사실상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은 여론을 의식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철도민영화가 아닌 코레일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초점을 뒀다. 철도민영화 방안을 중단하고 자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것.
실제로 코레일은 지난 12월10일 오전 임시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수서발 KTX 법인설립·출자계획을 의결했다. 국토교통부에서 면허신청·발급 절차를 거치면 수서발 KTX 운영사로서 공식 출범하게 된다.
코레일은 자본금 800억원 가운데 41%(328억원) 지분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공기업 공모를 통해 공적자금을 유치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공기업 공모로 이뤄지는 만큼 철도민영화가 아니라는 것.
반면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은 "수서발 KTX 법인설립·출자계획은 단계적 철도 민영화"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철도노조는 임시이사회가 통과된 직후 곧바로 대규모 파업을 단행했다.
공적자금 유치가 어려워 결국 민간자본이 들어올 빌미를 제공하는 데다 자회사 설립은 코레일이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운영자금이 더 든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특히 민간자본이 들어오면 코레일은 흑자 위주의 경영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이는 당연히 요금인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 정책이 민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열사) 분리를 통해 민영화의 교두보를 마련하거나 그 전 단계로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면서 "정부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민영화 추진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파업사태까지 부른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정부는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2월19일 이성한 경찰청장 주재로 전국지방경찰청장 화상 회의를 열고 "이번 파업은 민영화를 내세운 불법파업"이라며 "정부 방침과 마찬가지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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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는 정부… 고액 의료비 불안감 확산
의료 분야 역시 코레일과 사정이 비슷하다. 의료민영화가 아닌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
정부는 지난 12월1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대학병원에만 허가를 내줬던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자회사 설립을 길병원, 분당차병원, 강동성심병원, 을지병원 등 848개 의료법인에 허용키로 했다. 또 장례식장, 산후조리원 등으로 한정됐던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범위를 환자 진료를 제외한 의료기기 등 구매, 숙박업, 의약품·화장품·건강식품·의료기기 개발 등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약국의 법인화도 허용했다. 사회단체와 노조는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철도 자회사 설립처럼 사실상 단계적 의료민영화를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민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크다보니 정부가 우회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병원과 약국의 법인화를 허용하면 당연히 진료비와 약제비 등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소비자들이 부담을 그대로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가 내년 상반기 중 의료와 약국 법인화 허용에 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직은 시기를 보고 있지만 만약 이 정책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노동계도 파업으로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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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해법은 신뢰·소통…정부가 손 내밀어야
'민영화'일까, '선진화'일까. 혹은 '꼼수'인가, 반대를 위한 '반대'인가.
정부가 추진하는 코레일과 의료부문의 자회사 설립은 이렇게 두가지 쟁점으로 나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동계와 정부 양측(노정)이 한치의 양보 없이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일방통행과 같은 정책보다 대화와 소통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 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쪽이 정부인 만큼 반대세력의 의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노조도 좀 더 성숙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일부 누리꾼들이 자극적인 사례로 정부 정책을 불신하게 만들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훈 교수는 "지금은 대립관계보다는 노정이 해법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노정이 한발 물러서 서로 신뢰하는 중립적인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야 한다. 또 정부가 노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철도·의료 자회사 설립 논란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불거진 문제"라며 "현 상황에서 사실상 어떤 대안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 다만 보다 투명한 과정에서 서로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