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을 경험하게 되면 인간 남자친구를 다시 못 만날 거야.”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에서 인간의 성적 만족을 위한 로봇 지골로 조(주드로 역)를 탄생시킨다. 이른바 ‘섹스로봇’(Sex Robot)으로 통하는 조. 영화는 조와 같은 섹스로봇을 이미 그 시대 속 흔한 상업용 로봇으로 등장시키며 파격을 선보인다. 인간은 조를 두려워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하루에 셀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이 조와 같은 섹스로봇을 찾는다.

영화의 감정로봇이 현실이 되는 날도 머지않은 것일까. 먼 미래를 무대로 한 영화 속에서 상업용 로봇으로 등장했던 섹스로봇이 최근 출시를 앞뒀다.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섹스로봇 ‘록시’(Roxxxy)를 개발한 트루컴패니언이 올해 말 대당 7000달러(한화 약 830만원)에 출시계획을 공표한 것. 록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0 AVN 성인용품 엑스포’에서 첫 등장했다. 키 170cm, 몸무게 54kg(출시계획 27kg)에 란제리 속옷 차림을 한 록시는 인간의 피부와 같은 질감을 구현, 인공지능(AI)을 통해 사용자와 친밀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2'와 'A.I'.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2'와 'A.I'.

◆“섹스로봇? 감정 상실할 것”


트루컴패니언 측은 “록시가 아내나 여자친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루컴패니언의 창업자이자 록시의 아버지인 더글라스 하인스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단순한 섹스도우미를 넘어 동반자 관계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록시가 소유자의 취향을 파악하는 자기학습능력을 갖춰 성관계는 물론 친교나 상호작용을 하는 데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계획을 전달했다.

그러나 록시의 출시소식이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하지만은 않았다. 영국 드몽포르대학의 로봇 인류학·윤리학자인 캐서든 리처드슨 박사 등은 지난 9월 ‘섹스로봇에 반대한다’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리처드슨 박사는 “현재 섹스로봇에 대한 개발이 사회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로봇산업에서 섹스로봇에 대한 논의가 매우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인간이 상호작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 등을 상실한다는 점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보다 불평등과 폭력의 권력관계를 강화한다는 점 ▲성적인 착취와 성폭력을 예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섹스로봇에 반대한다.

거듭되는 찬반논의에도 불구하고 로봇전문가들은 앞으로 성(性)산업에서 보다 많은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노인이나 환자, 장애인의 성적만족을 위한 로봇, 배우자를 대신하는 로봇 등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성 심리학자인 영국의 헬렌 드리스콜 박사는 “50년 후에는 로봇과의 섹스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될 것”이라며 “인간과의 섹스보다 더 인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영국 일간지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기술이 보다 발전하면 외로움에 대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충격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로봇과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보다 더 낮은 가치를 지닌 것이란 선입견을 가져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킬러로봇, 무방비상태 올 것"

윤리적인 문제가 어디 사랑에서만 충돌할까. 지난 7월에는 1000명이 넘는 전세계의 저명한 학자와 IT전문가 등이 모여 전투로봇 이른바 킬러로봇(Killer Robot)이 “인류의 미래에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개발 금지를 위한 전세계적 차원의 공동노력을 촉구하는 공동서한을 공개했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과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철학자인 놈 촘스키 매서추세츠공대 교수 등 1000여명은 “킬러로봇은 인간의 개입 없이 사전에 설정된 기준에 따라 목표물을 선택해 공격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먼 곳에서 조종하는 무인기(드론)나 크루즈 미사일과는 다르다”면서 “핵무기와 비교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칼라시니코프(AK-47) 소총처럼 대량 생산돼 전세계에서 사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킬러로봇이 대중화될 경우 “암시장을 통해 테러리스트나 독재자, 군벌 등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국제협약으로 개발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I를 적용한 킬러로봇은 스스로 판단해 목표물을 추적 및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닌다. 전투 시 전투요원(군인)은 물론 비전투요원 등 인간의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비용 측면에서도 첨단무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에 미국을 주축으로 최근 세계 각국에서 킬러로봇에 대한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하지만 지난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특별회의에서도 유럽연합 일부 회원국 등은 “선진국들이 킬러로봇 개발에서 선두다툼을 벌여 새로운 무기경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킬러로봇이 현실화되기 이전에 엄격한 국제협약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로봇에 대한 인간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에 따라 기술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로봇에 대한 윤리 논쟁이 로봇의 윤리가 아니라 로봇설계자, 로봇제조자 및 로봇사용자 등 인간을 위한 윤리"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1942년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나는 로봇>에서 등장한 ‘3대 원칙’을 다시 강조한다. "①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하거나 태만해 인간에게 상처를 입혀서는 안된다 ②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 ③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앨런 테일러 감독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닐 블롬캠프 감독의 '채피'.
앨런 테일러 감독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닐 블롬캠프 감독의 '채피'.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