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언저리 물길에 수놓은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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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로 무무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에서 생뚱맞은 질문 하나 불쑥 내민다. 이 많은 물은 어디서 왔을까. 빗물 한방울 스며들 틈 없이 미장질한 광화문광장에서 온 것은 아니다. 청계광장에 꾸며놓은 키낮은 분수가 자연수 용출은 더더욱 아닐 터.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법. 하지만 청계천 하상보다 조금 더 높은 광화문우체국 옆 수로는 마른 지 오래다.
이 물은 대체 어디서 시작했을까. 옛 한양도성 지도를 머리에 넣고 마른 물길 되짚어 오르니 종로구 옥인동의 인왕산 수성동계곡(水聲洞溪谷)에 닿는다. 청계천의 발원은 이 수성동계곡 바로 아래 옥류동천(玉流洞川)이다. 인왕산에서 발원한 물이 서촌쯤에서 북악산의 백운동천(白雲洞川)과 합류한다. 이어 다른 하천들과 뒤섞여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 발원 이야기는 이처럼 안타깝게 과거형으로 끝난다.
◆인왕산 물길 따라 걷는 마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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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계곡은 건천 성격에도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도 품었다. /사진=박정웅 기자 |
물소리 맑고 우렁찼다는 수성동계곡은 옥류동천의 상류다. 옥류동천 전반을 덮은 복개의 시간. 이러한 물길의 흔적은 옛 지도에서 짐작할 따름이다. 경복궁역(2번출구)에서 북쪽 자하문로로 향하다 왼쪽 사선 형태로 구획을 가로지른 골목길이 옥류동천길이다. 길 이름을 듣고 혹시나 모를 발밑 물소리(水聲)에 귀를 쫑긋 세운다.
서울 도심에 있는 수성동계곡, 그리고 옥류동천길. 이번 여행은 인왕산 물길 따라 걷는 서촌여행이다. ‘복개’라는 개발과 편의는 인왕산의 맑은 물길을 발아래에 묻었으되 사람의 얘기를 마저 덮진 않았다. 옥류동천길을 따라 수성동계곡으로 향하는 골목길 곳곳에는 되짚어봐야 할 사람들과 얘깃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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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사진=박정웅 기자 |
경복궁 서쪽마을을 칭하는 서촌은 조선시대 이래 예인의 마을로 꼽힌다. 예술의 고장답게 정선, 윤동주, 이상, 박노수 등의 이름이 길 곳곳에 머문다. 게다가 올해로 즉위 600주년을 맞이한 세종대왕의 탄신지까지, 서촌여행은 챙길 게 많다. ‘세종이 나고 겸재가 그리고 이상이 시를 쓴 문화예술 마을.’ 몇 해 전 서촌을 이렇게 정의한 종로구의 탁견에 수긍이 간다.
◆사람들 들고나는 통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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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 도시락을 챙기는 통인시장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통인시장으로 향하는 옥류동천길 어귀, 오른쪽에 시인 이상의 집이 있다.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년을 머문 집터의 일부를 보전 관리한 곳이다. 옥류동천길 방향의 정문과 벽면을 모두 통유리로 개조했다. 철거 위기에 있던 곳을 시민모금과 기업후원으로 매입한 공간인데 새 단장이 한창이다.
옥류동천길 끄트머리, 제법 큰 정자가 눈에 띈다. 통인시장의 상징적인 장소로, 지역 어르신과 여행객들의 쉼터와 만남의 장 역할을 한다.
정자에 이르기 전 달달한 춘장 내음이 솔솔 풍긴다. 60년 가까이 2대를 이어온 화상 중국집인데 청양고추를 잘게 다져 매콤한 맛이 일품인 간짜장이 유명하다. 인근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 했던 족발집 주인은 건물주의 임대료 횡포에 망치를 들었다가 피의자 신분이 됐다.
지척에 있는 통인시장은 대표적인 관광형 시장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라 안팎으로 유명세를 탔다. 멋과 맛을 안다는 젊은이들에 더해 물 건너 온 이방인까지 줄지어 찾는다. 물론 관광지도에 이름을 올리기 전 청운·효자동 사람들의 생활시장 기능을 톡톡히 했다.
이곳은 떡볶이 등 분식거리부터 최근 엽전도시락까지 간편한 요깃거리가 많다. 특히 시장 한가운데 자리한 엽전도시락 카페는 통인시장과 서촌여행의 ‘방앗간’ 구실을 한다. 시장 초입에서 일종의 지역 화폐인 엽전을 담은 도시락을 사서 좌판의 이것저것과 바꿔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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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기념품 판매점으로 변신한 형제이발소. /사진=박정웅 기자 |
인왕산(仁王山)은 세종과 관련이 깊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조선시대엔 서산(西山)이라 불렀다. 세종 당시 집현전 학사들의 제언으로 서산은 인왕산(仁王山·어진 임금의 산)이 됐다. 세종 자신 또한 인왕산 자락(통인동 일대)에서 태어나 ‘어진 임금’이 됐다. 아픈 곡절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인왕산’(仁旺山) 개칭의 수모를 겪었고 1995년에야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올해는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자하문로와 옥류동천길의 갈림길에서 북쪽 자하문로로 몇 걸음을 더 떼면 세종 탄신지 표지석이 나온다. 통인시장은 세종 즉위 600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분위기를 띄운다. 그 여파는 시장 북쪽 형제이발소까지 옮겨갔다. 영화 <효자동 이발소>의 모티브가 된 이발소로 지금은 낡고 손때 묻은 이용 도구 뒤로 올망졸망한 ‘세종 굿즈’가 어린 여행객을 반긴다.
◆겸제 정선과 수성동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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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시범아파트에서 바라본 수성동계곡과 서촌 일대. /사진=박정웅 기자 |
9번 마을버스가 오가는 골목길, 그 길 끝은 수성동계곡이다. 통인시장 정자를 기준으로 옥류동천길에서 옥인길을 잇대어 걸음하면 옛것과 새것이 정겹다.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윤동주 하숙집터, 아기자기한 공방과 카페가 지역민의 삶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박노수미술관(서울시문화재자료 제1호)은 친일파 윤덕영이 자신의 딸을 위해 지은 주택에 터를 잡았다. 누구보다 빨리 시류에 영합했던 친일파 윤씨는 1930년대 서양의 입식생활을 지향하면서도 전통적인 온돌을 택했다. 1970년대 박노수 화백이 매입해 작품활동에 전념한 공간이다. 지금은 박 화백의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세계를 만나는 미술관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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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동 윤동주 하숙집터를 알리는 동판이 조그맣다. /사진=박정웅 기자 |
윤동주 하숙집터는 걸어야만 만날 수 있다. 마을버스가 지나는 길목, 동판 하나 일반주택 담벼락에 담쟁이처럼 철썩 달라붙어 있다. 걷다가 그냥 지나치기 일쑤일 정도로 동판은 작고 평범하다. 연희전문 시절, 윤동주가 소설가 김송 선생 집에서 하숙하며 ‘서시’와 ‘별 헤는 밤’ 등의 명시를 남긴 곳이다.
서촌여행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밑그림으로 한다. 서촌(청운동 일대)에서 나고 자란 정선은 인왕산의 진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인왕산 풍경은 크고작은 건물에 가려 화폭이 달라질 뿐, 인왕산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마을버스 종점은 수성동계곡의 시작이다. 청계천까지 옥류동천 물길은 복개의 시간에 묻혀 있다. 다만 이곳 높은 데서 저 아래 낮은 데로 이어졌다는 흐름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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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9번 마을버스 종점을 뒤로 인왕산이 펼쳐진다. /사진=박정웅 기자 |
종점 끝 작은 마을공원에 서면 수성동계곡은 겸재 시절의 풍광 그대로다. 오늘의 수성동계곡은 겸재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중 ‘수성동’(水聲洞)을 꼭 빼닮았다. 계곡 주변의 옥인시범아파트를 일부 철거해 인왕산의 인상적인 암반과 계곡이 화폭 그대로 살아났다. 특히 계곡과 그 사이를 잇는 통돌로 만든 기린교는 영락없다.
◆조금 더 걷고 싶다면 ‘인왕산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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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로에서 시작하는 인왕산숲길과 이를 알리는 표지석. /사진=박정웅 기자 |
청계천에서 물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서촌여행은 얘깃거리가 많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조선 이념의 실체인 사직단에서 인왕산로를 따라 서촌여행을 시작해도 좋겠다. 인왕산숲길을 이용한 것이다. 사직단에서 단군성전, 황학정, 택견수련터를 거쳐 수성동계곡에서 발을 담근 뒤 옥류동천길로 내려오는 코스를 챙겨볼 만하다. 가볍게 걷는 코스로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인왕산숲길의 끝은 윤동주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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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행촌동 주택가에 숨은 딜쿠샤. /사진=박정웅 기자 |
또 사직터널 위쪽의 행촌동에도 둘러볼 만한 건축물이 있다.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알버트 테일러 부부의 저택인 ‘딜쿠샤’가 주택가에 숨어있다.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일제의 강제추방 고초를 겪은 그는 유언에 따라 서울(양화진 외국인묘지)로 되돌아왔다. 딜쿠샤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 장군의 집터와 수령 460년 이상의 은행나무도 늘 푸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1호(2018년 10월10~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