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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리테일 본사/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
#. 1986년 박 회장은 잉글랜드를 ‘이랜드’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법인화했다. 법인화 이후 패션 기업으로의 행보를 본격화했다. 이랜드가 내놓은 브렌따노, 헌트, 언더우드 브랜드의 제품은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패션사업만 했던 1993년 매출이 5000억원을 넘어섰다.
40여년 전 작은 보세옷가게는 매출 12조원에, 80여개 계열사를 둔 패션·유통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박성수 회장의 공이 절대적이라는 평가다. 그는 남다른 역발상 전략과 마케팅으로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박 회장은 대내외 활동에 적극적인 경영인은 아니었지만 그룹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등 절대적인 힘을 가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그가 돌연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내년 창립40주년을 1년 남기고서다.
◆ 이랜드 창업공신 경영전면에
이랜드그룹은 지난 3일 박 회장과 박성경 부회장 등 오너일가가 경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박 회장의 여동생으로 함께 회사를 경영해왔다. 이랜드파크 이사회 멤버로도 활동중이다.박 부회장은 부회장직을 내려놓지만 이랜드재단 이사장은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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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회장, 박성경 부회장/사진=이랜드, 뉴스1 이동원기자 |
그들이 물러난 자리는 이랜드 ‘창업공신’들이 메운다. 이 과정에서 부사장이 부회장으로 두 단계나 승진했고, 주요 사업부문별로 30대, 40대 젊은 최고경영자(CEO)를 대거 발탁하는 등 파격이 거듭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일규 이랜드월드 대표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사장 직함을 달고 있었다. 단번에 두 단계나 파격 승진한 셈이다. 그는 박 회장이 잉글랜드라는 옷가게를 운영하던 시절 같은 교회에 다니던 후배로 1984년 입사 후 줄곧 이랜드 성장과 함께해왔다. 김 대표는 중국 사업의 기반을 닦는 등 해외 법인 대표를 맡아 이랜드그룹이 인수합병(M&A)한 브랜드를 키워내는 데 기여한 공로를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내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는 이랜드리테일의 최종양 사장도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해 유통 법인 전체를 총괄한다.
호텔과 리조트, 외식사업을 총괄하는 이랜드파크 총괄대표이사에는 사장으로 승진한 김현수 이랜드파크 부사장이 선임됐다. 김 사장은 1988년 이랜드에 입사해 아동사업, 리테일 본부장, 중국 전략기획실장, 중국 패션부문 대표, 이랜드파크 대표 등을 지냈다.
이랜드가 해외사업 승부처로 꼽고 있는 인도·베트남시장 담당에는 이은홍 베트남법인장 부사장이 승진 임명됐다. 이 사장은 신입사원 때부터 20년간 스리랑카와 인도, 베트남, 미얀마 등 이랜드의 해외 생산 인프라를 직접 일궈낸 그룹 내 대표적인 ‘생산통’으로 꼽힌다.
주요 사업부문에는 젊은 인재를 대표이사로 대거 중용했다. 이랜드월드 패션부문 대표로 선임된 최운식(40) 상무는 패스트패션(SPA) 브랜드인 스파오사업 본부장으로 일하며 국내 최대 토종 SPA 브랜드로 키운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랜드파크 외식부문 대표에는 그동안 이랜드그룹의 외식사업 운영을 맡아온 김완식(35) 외식본부장이 임명됐다. 이랜드리테일 사업부문 대표에는 석창현(54) 상무, 상품부문 대표에는 정성관(52) 상무가 선임됐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번 인사와 조직개편을 계기로 각 계열사별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그룹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면서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차별화된 성장전략을 통해 이랜드리테일의 성공적인 기업공개(IPO)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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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박 회장의 이러한 결정이 그룹의 지속적인 경영난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한때 이랜드그룹은 활발한 M&A와 중국 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10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40위권 기업으로 급성장했지만, M&A를 위해 과도하게 빌린 돈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이랜드는 M&A에 들어가는 돈을 자체 내부 유보금이나 외부에서 빌린 돈으로 충당했는데 차입금 규모가 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패션 시장도 정체되면서 이랜드의 자금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부동산 등 주요 자산 매각 작업에 돌입한 것도 이때부터다. 급기야 최근 주력 의류브랜드인 ‘티니위니’를 7800억원에 중국 매각하는 초 강수를 두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알짜 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작업에도 경영사정이 나아지질 않자 자금난을 일시에 해소할 수 있는 이랜드리테일 상장에 사활을 건 것으로 보인다”며 “경영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통해 투자자들에 신뢰를 얻기 위해 박 회장이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5호(2019년 1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