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소형SUV 붐이 불기 시작하면서 경차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경차의 몰락은 계속될 전망이다. 기아차가 2017년 이후 3년 만에 부분변경 모델을 선보였지만 신차 효과를 보지 못하는 분위기다. 설상가상 혜택축소도 논의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2015년 소형SUV 붐이 불기 시작하면서 경차의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경차의 몰락은 계속될 전망이다. 기아차가 2017년 이후 3년 만에 부분변경 모델을 선보였지만 신차 효과를 보지 못하는 분위기다. 설상가상 혜택축소도 논의되고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때 ‘내 생애 첫 차’로 각광받으며 소비자의 구매 선택지에 오르내리던 경차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국내 완성차 2위 업체인 기아자동차가 신차를 내놓고 분위기 전환에 나섰지만 ‘신차 효과’가 있나 싶을 정도로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경쟁력 없는 가격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패턴, 소형SUV 강세 등이 맞물리면서 경차시장의 몰락은 더 심화되고 있다.

전성기 끝난 경차, 몰락 가속화

경차는 정확히 어떤 차를 말하는 것일까.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2조 자동차의 종별 구분을 살펴보면 배기량 1000cc 미만, 길이 3.6미터, 너비 1.6미터, 높이 2.0미터 이하의 규격을 갖춘 차를 뜻한다. 국가별로 경차에 대한 기준은 상이하다. 소형차 선호도가 높은 유럽은 배기량 1000cc 미만, 길이  3.7미터 이하, 너비 1.5미터 이하, 높이 1.4미터 이하의 차를 경차로 칭한다. 한때 내수시장에서 전체 판매비중의 3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던 경차 강국 일본은 국내보다 더 작은 차를 경차라 부른다. 일본의 경차 기준은 배기량 660cc 미만, 길이 3.4미터, 너비 1.4 미터, 높이 2.0미터 이하다.
국내시장에서 경차의 전성기는 2012년이었다. 연간 20만대 규모로 성장한 경차시장은 내수점유율을 13%까지 끌어올리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기아차의 모닝과 한국지엠의 스파크는 연간 판매량 기준 상위 3, 6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 경차시장은 18만대 수준으로 줄었지만 모닝이 한해 9만3631대 팔리며 국내 승용차 내수판매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아반떼, 그랜저, 쏘나타, 싼타페 등이 모두 모닝의 아래였다.

한동안 지속될 것 같던 경차의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2015년 깜짝 등장한 쌍용자동차의 소형SUV 티볼리다. 2013년 르노삼성자동차 QM3 등의 등장으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한 소형SUV시장은 티볼리를 발판으로 대폭 성장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5년 소형SUV는 내수시장에서 11만대 이상 팔렸다. 2013년 약 1만대 수준에서 2년 만에 10배 이상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후 매년 3만대 내외의 성장을 보였고 2019년에는 22만대 규모로 성장했다.


주요 소비층이 20~30대 여성인 소형SUV가 인기를 끌면서 소비층이 겹치는 경차는 외면받기 시작했다. 국내 경차시장 규모는 2015년 17만3418대에서 이듬해 17만2987대로 소폭 감소했다. 이후 2017년 13만8202대, 2018년 12만5931대, 2019년 11만3708대로 해를 거듭할수록 시장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올 상반기 판매량은 4만7371대에 머물며 전년대비 15.7% 감소했다.

최근 연달아 선보인 신차가 높은 판매대수를 기록하며 ‘신차 효과’를 톡톡히 본 기아차도 시들해지는 경차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지난 5월 기아차는 2017년 출시된 모닝 3세대 모델의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제품을 출시한 바 있다. 이 모델은 출시 첫달 3452대가 팔리며 전월대비 판매량이 약 18% 늘었지만 다음달인 6월(3260대)부터 곧바로 판매량이 줄었다.

업계에서는 경차의 몰락이 소형SUV의 등장, 경쟁력 없는 가격, 실용성을 추구하는 소비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풀이한다. 업계 관계자는 “경차가 저렴한 가격과 함께 작은 크기로 운전하기 쉬워 사랑을 받았지만 경차와 큰 차이가 없는 가격에 실용성까지 갖춘 소형SUV가 등장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며 “가격, 실용성 등을 고려할 때 경차를 살 바에는 조금 더 돈을 보태서 다른 차를 산다는 생각이 경차 판매감소를 불렀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12일 기아차는 2017년 출시된 3세대 모닝의 상품성 개선 모델인 모닝 어반을 출시했다. 이 모델은 출시 2개월여 만에 전월대비 판매량이 감소했다. /사진=기아자동차
지난 5월 12일 기아차는 2017년 출시된 3세대 모닝의 상품성 개선 모델인 모닝 어반을 출시했다. 이 모델은 출시 2개월여 만에 전월대비 판매량이 감소했다. /사진=기아자동차

그나마 받던 혜택도 사라질 판

경차의 장점 중 하나인 여러 혜택을 축소한다는 논의도 있어 시장위축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현재 정부는 경차의 대표적인 혜택 중 하나인 통행료 할인혜택 축소를 검토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5일 ‘고속도로 통행요금 감면제도 개선방향’을 주제로 한 공청회를 열었다. 현장에서 한국교통연구원은 경차 등의 통행료 할인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발표했다.
현행법상 경차는 고속도로 등의 유료도로에서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정부는 1996년 건전한 소비문화 및 에너지절감을 실현하기 위해 경차에 대한 통행료 할인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조사결과에서 경차 연비가 소형차와 유사한 수준이며 중·대형차보다 유해물질 배출량이 5~6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차를 보유한 가구의 63.5%가 차를 2대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건전한 소비문화 확산이라는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나고 있다고 한국교통연구원은 지적했다. 이들은 경차 혜택을 순차적으로 축소하고 전기 및 수소차에 대한 할인혜택을 늘려 친환경차 정책을 펼치는 세계 흐름에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는 과거보다 더 똑똑하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경차에 대한 구매욕구가 줄어든 모습”이라며 “저렴한 차, 기본만 있는 불편한 차 등 경차를 무시하는 분위기도 소비위축을 앞당기는 원인이다. 소형SUV로 인해 경차에 대한 판매감소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