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8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하루에 3시간 정도 그립니다. 마치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듯 캔버스 3개를 번갈아 진행합니다. 하나를 그리다 보면 다른 작품에서 어디를 그려야 할 지가 보입니다. 내일은 저걸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이창규 화백은 19일 첫 개인전 '도시와 사람들'이 펼쳐지고 있는 서울 중구 정동 산다미아노 갤러리에서 기자를 만나 "바쁘게 살다가 은퇴 후에 할 일이 없어서 허전해지곤 했는데 그림을 그리니까 무력감에 빠질 일이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화백은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매출액 23조 원대를 유지하는 종합상사 SK네트웍스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그는 은퇴 당시를 회상하며 "운동선수는 전성기 이후 쇠퇴기를 거쳐 은퇴하지만, 직장인은 승진을 거듭해 정점에 섰을 때 수직 낙하하듯 은퇴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은퇴자가 공통으로 겪는 것이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채우지 못해서 겪는 무력감"이라며 "저도 처음엔 대금도 불고 사진도 찍었지만 캔버스를 채우는 일이 가장 적성에 맞았다"고 밝혔다.

학창 시절에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단 한 번도 그림에 소질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면서도 "다만 직장생활 도중에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해당 지역의 미술관을 놓치지 않고 방문하곤 했다"고 강조했다.
막연한 호감에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이 화백은 "그림을 그리기 2년이 지나자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조바심에 첫 침체기를 겪었다"며 "취미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는 동료들의 그림과 비교할 때 수준 차이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화백이 침체기를 극복한 방법은 정면돌파였다. 그는 "지도교사와 상담했지만 더 노력하는 수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들었다"며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딨냐는 마음에 연필화를 하루에 3장씩 꼬박 그렸고 1000장을 넘어가자,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 앞서 2023년 통일문화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2024년 중앙회화대전에서 입선하면서 자신감을 더욱 쌓아갔다.

이 화백은 10년 동안 정밀한 구상화만 그리다 2년 전부터 비구상화로 넘어갔다. 그 계기가 포르투갈에서 우연히 마주친 성요한 축제였다. 개인전 '도시와 사람들'에는 그가 2023년 포르투갈의 도시 포르투 방문 이후에 그린 유화 15점을 만날 수 있다.
이 화백은 "성요한 축제는 사람들이 뿅망치를 들고 다니면서 서로 때리곤 한다"며 "서로를 때릴수록 흥이 돋는 축제가 벌어지는 도시에서의 감흥을 그림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상으로 그렸지만, 감흥이 되살아나지 않아서 비구상(추상)을 넘어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15점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하적 도형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유화 특유의 튀어나온 물감들이 뿅망치를 들고 거리를 채운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 파스텔 색감은 이 화백이 느낀 감흥의 집약체다.
그는 "부산 감천동이나 통영에 갈 때도 포르투에서 느낀 감흥을 받곤 한다"며 "이번 개인전이 끝나면 지난해 다녀온 프랑스 남부에서의 감흥을 화폭에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창규 화백 개인전 '도시와 사람들'은 오는 31일까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