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갤러리 에바 프레젠후버가 캐나다 작가 스티븐 시어러의 여덟 번째 개인전 '양모와 형상들'(울스 앤 에피지스, Wools and Effigies)'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에바 프레젠후버와 P21 최수연 대표의 다섯 번째 협업이다. 드로잉, 회화, 프린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물화를 탐구한다. 전시 제목은 시어러의 작업 전반에 흐르는 잡동사니 같은 미감을 반영한다. 세련된 골동품과 기이한 고물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상점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의 중심 작품인 '피규린 페들러'(Figurine Peddler, 2025)는 조각상을 든 남성을 묘사하며 현실과 비현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밝은 노란색인 행상의 손과 조각상의 얼굴은 두 대상이 같은 세계에 속함을 암시한다. 사색적인 행상과 달리, 조각상은 관람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묘한 생동감을 발산한다. 작품 상단의 트롱프뢰유(눈속임 기법) 커튼봉은 사실적인 표현이 점차 양식화된 형태로 전환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움바 룸'(Womba Loom, 2017)은 시어러가 양모 페티시 웹사이트에서 수집한 이미지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한 프린트 작품이다. 상업 및 아마추어 사진을 교차 배치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연상시키는 여성 형상과 양모 수공예품을 연결한다. 이 작품은 양모와 풍만한 형상에 대한 보편적 매혹을 탐구하며, 가면 같은 요소들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드로잉 연작은 가면과 문양으로 꾸민 남성 형상을 조각상처럼 전면에 내세운다. 시어러는 초크 펜슬을 사용해 거친 얼굴 질감을 강조했다. 작품 제목들은 '불신'의 기운을 풍기며, 가면 뒤에 숨은 인위성과 기만성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의 모든 작품은 인물을 대상이자 인공물로 바라보는 공통된 시선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정체성과 표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흐릿한 상태에 대한 깊은 사유를 펼친다.
스티븐 시어러는 밴쿠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20여 년 동안 프린트, 조각, 회화, 드로잉, 파운드 포토그래피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해 왔다. 그의 작품은 아이슈티 재단(베이루트), 루이비통 재단(파리),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몬트리올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등 전 세계 여러 공공 기관과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