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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에 있던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날을 기점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권 문제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일본의 발뺌에 기막혀 증언하게 됐다"… 김학순 할머니가 밝힌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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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일본군에게 잡혀 위안부 생활을 했던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 마련한 기자회견장에 나와 국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김 할머니는 진실을 밝히게 된 이유에 대해 "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일본 사람들이 정신대란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발뺌하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 증언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안 갈려고 반항하니까 발로 차면서 내 말을 들으면 넌 살 것이고 반항하면 여기서 죽는 거라고 했다"며 "계집애가 이 꽉 물고 강간당하는 그 참혹함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때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라고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국제적 움직임이 지속되자 국가 차원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존엄·명예를 회복하고 여성 인권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기 위한 입법 활동이 추진됐다.
2017년 9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제정 내용을 담은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 안정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의결됐다. 해당 개정안은 2017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매년 8월14일이 공식적·법적인 국가기념일로 확정됐다.
최초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 "마지막 소원은 일본의 사죄"
증언 후 1997년 12월16일 세상을 떠난 김학순 할머니는 뉴스타파와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여성단체들이 모금해서 위로금을 준다고 했다"며 "왜 우리가 위로금을 받나. 그럴 수는 없다. 정정당당하게 사죄하고 배상하라"라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필요 없다. 일본 일왕이 사죄하라"라고 강조했다.하지만 김 할머니의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8년이 흘렀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현재 정부 등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단 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