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재 블루오벌SK 전경. /사진=SK온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업계도 ESS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높은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키우고 관련 수주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중국발 저가 공세 등의 위기를 ESS 전략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12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전날 포드와의 미국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블루오벌SK'(지분 50:50) 생산 시설을 독립 소유 및 운영하는 데 합의했다. SK온은 테네시주의 위치한 공장을 운영하고 포드는 자회사를 통해 켄터기주 공장을 맡는 게 합의의 핵심이다.


SK온의 이번 결정은 사업 포트폴리오 무게를 ESS에 두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북미 전기차 시장이 캐즘과 보조금 종료 등으로 난관에 부딪힌 반면 ESS 수요는 급격히 늘고 있어서다. 실제 북미 ESS 시장은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등의 영향으로 2030년까지 매년 약 20%씩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단독 운영 체제를 통해 현지 ESS 생산 체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생산계획을 유연하게 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SK온의 ESS 중심 기조는 수주 성과에서도 드러난다. 회사는 지난 9월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플랫아이언 에너지 개발'과 1GWh 규모의 ESS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플랫아이언이 2030년까지 매사추세츠주를 포함해 미국에서 추진 중인 6.2GWh 규모 프로젝트 '우선 협상권'도 확보했다.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SK온은 내년부터 4년간 최대 7.2GWh의 ESS 제품을 공급한다. 수주 규모는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온 관계자는 "자산·생산 규모 전반의 효율화를 위한 전략적 재편"이라며 "테네시 공장에서 포드 등 다양한 고객사의 전기차 배터리뿐 아니라 ESS 공급도 확대해 북미 시장에서 수익성 중심의 성장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도 최근 유사한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10일 미국의 에너지 인프라 개발·운영 업체와 ESS용 LFP 배터리 공급을 위한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 2조원이 넘는 계약 규모로 오는 2027년까지 약 3년간 공급이 이뤄질 예정이다. ESS용 LFP 배터리의 첫 장기 공급계약으로 미국 내에서 시장 기회가 확대됐단 평가다.

제품은 미국 현지 공장의 라인 전환을 통해 생산될 계획이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공동으로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가동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자사 일체형 ESS 배터리 설루션 SBB 2.0에 탑재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SBB는 20ft 크기 컨테이너에 배터리와 화재 안전장치 등을 통합 설치한 일체형 ESS 설루션으로 SBB 2.0은 각형 LFP 배터리가 적용된 첫 모델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ESS용 LFP 배터리의 대규모 장기 계약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글로벌 고객사들에 화재 안전성은 물론 성능과 가격 경쟁력이 모두 뛰어난 ESS 제품 공급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일찌감치 북미 ESS 시장 공략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올해 7월에는 테슬라로 추정되는 기업과 6조원 규모의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단일 계약 기준 최대 수주를 기록했다. 올 3분기에는 미국 주택용 ESS 기업과 6년간 총 13GWh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현재는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대규모 양산하고 있다. 본래 미국 애리조나에 신규 공장을 건설해 내년부터 양산할 계획이었으나 EV용 배터리 생산 공장을 ESS 생산 라인으로 빠르게 전환해 양산 시기를 앞당겼다. 향후 ESS 추가 수주와 라인 전환을 적극 추진해 미시간 홀랜드 공장 생산 능력을 올해 말 17GWh, 내년에는 30GWh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셀부터 시스템 운영·관리까지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며 "2027년까지 각형 기반 LFP ESS 제품도 준비할 예정이고 시스템 측면에서도 전력 수요 예측과 거래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 입지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