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부실 입법'의 고리를 끊기 위해 '사후 입법영향분석'(PLS)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진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 만들면 끝? 입법 결과 환류 제도 정책 토론회'가 개최된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법을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부실 입법'의 고리를 끊기 위해 '사후 입법영향분석'(PLS)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안 시행 결과가 다시 입법 과정으로 환류되는 시스템을 구축해 정책 실효성을 높이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은 법 시행 이후 정부·의회 차원의 평가를 제도화해 운영하는 반면 한국은 사전·사후 입법영향분석이 의무화돼 있지 않아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법안 발의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 만들면 끝? 입법 결과 환류 제도 정책 토론회'에서 PLS를 "법률 시행 이후 해당 법이 당초의 입법 목적을 달성했는지, 어떤 부작용이나 예기치 못한 영향이 발생했는지를 점검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 분석 결과는 후속 입법 개정, 보완 또는 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근거로 활용되며 단순히 법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집행 방식 개선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PLS의 필요성으로는 ▲법률의 품질 제고 ▲행정부와 입법부의 책임성 강화 ▲조직 차원의 학습 효과 ▲입법에 대한 국민 신뢰 제고 등을 들었다. 이러한 평가가 누적될수록 사후 분석을 거친 법은 '신뢰할 수 있는 법'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사후 분석 결과는 사전 입법영향분석으로 다시 환류되며 사전 분석에서 제기된 쟁점이 일정 기간 후 사후 분석의 핵심 지표로 작동하는 등 입법 전 과정이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루게 된다.

한국은 사전·사후 입법영향분석 체계가 자리 잡지 않아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법안 발의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 만들면 끝? 입법 결과 환류 제도 정책 토론회'가 개최된 모습. /사진=김성아 기자

정 조사관은 주요 사례로 영국과 EU를 소개했다.

영국은 2005년 이후 국왕의 재가를 받은 모든 법률에 대해 해당 법 집행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법 시행 후 3~5년 이내에 그 법률의 집행 결과와 입법 목적 달성 여부를 정리한 정리한 메모랜덤을 관련 상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사후 평가의 1차 주체는 정부 부처다. 내각제 국가 특성상 정부가 초기 평가를 수행하고 의회는 이를 토대로 추가 분석이나 후속 입법 여부를 결정한다. 초기 평가는 '예비 평가'로 최종 판단은 상임위원회가 한다.


EU는 유럽의회·유럽이사회·유럽집행위원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2016년 '더 나은 법을 위한 기관 간 협의'를 체결했다. 사전·사후 입법영향분석을 모두 포함하고 법적 구속력도 갖는다. 유럽의회의 PLS는 유럽의회조사처(EPRS)가 담당하며 ▲간이 이행 평가 ▲심층 유럽 이행 평가 ▲롤링 체크리스트의 3단계 체계로 운영된다. 간이 이행 평가는 약 10~12쪽 분량의 짧은 보고서로 제출되지만 상임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심층 평가로 확대된다.

정 조사관은 "2005년 이전에는 법이 실제로 잘 작동했는지, 의도한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입법이 반복됐다"며 "평가에 기반한 입법을 하자는 문제의식에서 PLS가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 제정된 '코끼리 상아 거래 금지법'(Ivory Act)에 대한 PLS 사례가 대표적이다. 평가 결과 규제 메시지는 명확하게 전달됐으나 시행 기간이 짧아 실질적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했고 예외 규정이 지나치게 복잡해 소상공인과 골동품 상인에게 과도한 행정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집행 기관의 역량 부족 문제도 드러났다.

한국은 사전·사후 입법영향분석 체계가 없어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법안 발의가 반복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정 조사관은 "한국에는 사전·사후 입법영향분석이 제도화돼 있지 않다"며 "사후 분석 결과를 정치적 책임 공방이나 실패 낙인에 활용할 경우 제도 정착은 어렵다"고 했다. "데이터 기반 학습과 개선의 과정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PLS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입법을 '생산'이 아닌 '품질'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 ▲법률을 생애주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 ▲PLS가 단순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 정책 학습과 제도 개선을 위한 도구로 인식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