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을 앞둔 국민성장펀드와 한국형 국부펀드가 제약·바이오산업 신약개발 부문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약개발 성과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R&D(연구·개발) 투자를 뒷받침하는 정부 지원이 불가피하다. 신약개발 부문 투자는 국내 제약업계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제네릭(복제약) 위주의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데에도 효과적일 전망이다.
신약개발에 10년·1조원 투자… 유망물질 해외로 넘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10년 이상의 R&D 기간과 1조원이 넘는 투자금이 필요하다.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초기 단계부터 동물실험 등 전임상 단계, 임상 1~3상의 문턱을 모두 넘어야 한다. 임상 단계가 진행될수록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신약개발 성공률이 10% 미만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약·바이오 회사가 단독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지 못해 기술이전으로 이익을 얻는 사업 구조를 꾸려 왔다. 자금난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핵심 파이프라인을 외부로 넘기는 것.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 하면 계약금을 받아 투자 등 사업을 지속해서 영위할 수 있다. 신규 임상 진입 등 개발 단계에 따라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을 받을 수 있고 신약이 상용화되면 로열티(경상 기술료) 수령도 가능하다.
문제는 기술이전 시 신약개발 성과를 일정 부분밖에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내 개발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대표사례다. 렉라자는 블록버스터(연간 매출 10억달러·1조원) 의약품 등극을 앞두고 있으나 개발사인 국내 회사들에 돌아가는 로열티는 글로벌 매출의 10% 수준에 그친다. 렉라자 로열티는 원개발사인 오스코텍과 자회사 제노스코가 각각 20% 받고 유한양행이 60%를 챙기는 방식으로 분배된다. 유한양행은 오스코텍으로부터 렉라자 기술을 이전받은 후 이노베이티브 메디슨(옛 얀센)에 글로벌 판권을 넘겼다.
오스코텍 관계자는 "레이저티닙 기술이전 전에는 치과 부자재 관련 사업에서 소량의 매출만 나오고 있어 추가 파이프라인 투자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기술이전은 신약개발 부문 첫 성과이자 수익실현"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다른 파이프라인 투자가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임상 수행 부담을 줄이고 글로벌 규제기관 승인을 통해 신약이 실제로 상용화될 수 있도록 빅파마에 렉라자 기술을 이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릭→신약 패러다임 전환… 수익성도 매력적
제네릭 위주의 사업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서도 신약개발 투자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정부는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인하해 국민 부담을 낮추고 신약개발 의지를 독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네릭 약가 인하 시 국내 제약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신약개발 투자 여력이 감소하는 만큼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업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해 기업들의 지속 성장을 돕고 신약개발 여력을 키워야 한다는 시각이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지난해 말 제약·바이오기업 CEO(최고경영자)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제네릭 약가 인하 시 업체들의 연구개발비는 평균 25.3% 줄어들 전망이다. 기업당 평균 축소액은 366억원에 달한다. 약가제도 개편안이 시행되면 제약산업계는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축소 등 직격탄을 맞아 산업경쟁력이 약화할 것으로 비대위는 우려하고 있다.
신약개발에 투자해야 국민성장펀드와 한국형 국부펀드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신약개발에 성공하면 특허를 통해 지적재산권이 보호돼 한동안 시장을 독점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신약을 개발할 경우엔 약물 하나로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빅파마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출 300억달러(44조여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게 제일 바람직하지만 글로벌 빅파마 중심 현지 마케팅 등 글로벌 생태계를 살펴보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신약개발 초기 단계나 임상 1~2상 등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분야에 투자해 임상 3상 교두보를 마련하고 민간 경쟁 플랫폼 조성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파괴된 벤처 생태계를 복원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AI(인공지능), 그린바이오 등도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