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시티 홈구장인 이티하드 스타디움 경기장 안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공인구가 놓여 있다. 맨체스터 시티는 CAS 판결을 통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가능해졌다. /사진=로이터
맨체스터 시티 홈구장인 이티하드 스타디움 경기장 안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공인구가 놓여 있다. 맨체스터 시티는 CAS 판결을 통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가능해졌다. /사진=로이터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어쩌면 유럽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판결 중 하나가 나왔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에게 내려진 유럽축구연맹(UEFA)의 징계를 경감하고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UEFA는 지난 2월 맨시티에게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 위반을 이유로 향후 2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 정지와 3000만유로(한화 약 41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FFP 규정을 위반해 이 정도 중징계가 내려진 사례는 그동안 없었다. UEFA가 지난 20년 동안 축구계를 뒤흔들었던 '슈가 대디'들에게 처음으로 칼을 뽑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UEFA의 징계가 막히자 유럽 곳곳에서 항의가 터져나오고 있다. 2년 연속 맨시티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을 펼쳤던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판결이 나온 뒤 "오늘은 축구에게 있어 좋은 날이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반면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은 "오늘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좋은 날"이라고 판결을 반겼다. CAS의 이번 판결은 클롭을 비롯한 모든 비판가들처럼 정말 축구의 정의를 훼손한 것일까.


맨시티의 징계 철회, 어떻게 이뤄졌나

맨시티의 FFP 규정 위반 의혹은 지난 2018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주간지 '슈피겔'이 축구계 폭로매체 '풋볼리크스'와 손을 잡고 맨시티와 파리 생제르망(PSG)의 비리를 보도했다.

FFP는 기본적으로 유럽 축구팀 간의 공정 경쟁을 위해 탄생한 규정이다. '번 만큼 쓰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FFP는 각 팀들이 축구를 통해 번 돈 이상을 축구에 쓸 경우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첼시, 맨시티, PSG 등 그동안 갑부 구단주들의 투자 하에 막대한 이적료를 투자했던 팀들에게 하나의 제한선을 두자는 의미다.

슈피겔은 맨시티가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UEFA에 제출한 서류에서 자신들이 받은 스폰서십 계약의 가치를 부풀려 적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원래대로라면 FFP 규정에 위배되는 규모로 이적료와 주급 등을 지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UEFA 산하 구단재정관리본부(CFCB)는 이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지난 2월14일 CFCB 내 수사기관은 "맨시티가 지난 2012년부터 4년 동안 UEFA에 제출하는 손익분기 정보에서 스폰서 계약 수익을 과장되게 적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CFCB는 여기에 더해 "(맨시티 구단은)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왔다"라고 덧붙였다. CFCB의 보고서를 받은 UEFA는 맨시티에게 철퇴를 내렸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비롯한 맨체스터 시티 구성원들은 일관되게 무혐의를 주장해왔다. /사진=로이터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비롯한 맨체스터 시티 구성원들은 일관되게 무혐의를 주장해왔다. /사진=로이터
맨시티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맨시티 구단은 UEFA의 징계가 발표되자 "(이번 조사와 징계는) 결함투성이에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라며 즉각 CAS에 항소했다. 구단은 CFCB가 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메일을 해킹했으며 구단 측은 이런 조사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CFCB가 수집한 증거가 모두 불법적으로 취득됐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CAS는 맨시티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판결 자체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우선 CAS는 맨시티가 FFP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맨시티가 규정을 위반했다며 제출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CAS는 챔피언스리그 진출 금지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CFCB가 제출한 근거가 부적합하거나 공소시효기간이 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혐의 자체가 아닌 증거의 부합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린 것이다.

CAS는 맨시티를 둘러싼 '스폰서 수익 과장 기재' 혐의에 대해서도 "UEFA 클럽대항전 참가를 막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되레 CAS는 맨시티 구단이 CFCB의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협조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벌금도 기존의 3000만유로에서 1000만유로로 경감했다. 결국 맨시티는 깎인 벌금만 받은 채 다음 시즌 다시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다.

맨시티와 CAS, 정말 '축구의 정의'를 어겼을까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왼쪽)은 CAS의 이번 판결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사진=로이터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왼쪽)은 CAS의 이번 판결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사진=로이터
이같은 맨시티의 징계 철회는 각지에서 집중 포화로 돌아왔다. 위르겐 클롭, 조세 무리뉴 등 감독들은 "이제 아무도 (FFP를) 신경쓰지 않고 돈을 가진 이들이 원하는 데로 흘러갈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FFP는 죽었다"라고 자체 사형선고를 내렸다.
주요 외신들도 앞다퉈 비판을 던졌다. 영국 'BBC'는 논평을 통해 "FFP의 신뢰도는 누더기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구단 중 하나가 명확한 혐의와 위반 사례가 있음에도 1000만유로 징계만 받고 멀쩡히 걸어나오는데 어찌 FFP가 살아남을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번 판결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미 흔들리는 스포츠계를 더욱 위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맨시티가 징계를 피한 건 '도덕적으로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다. 징계를 피하게 된 과정과 결과 모두 명쾌하지 않다. 맨시티가 지난 2009년 셰이크 만수르 구단주 체제로 돌아선 이후 막대한 돈을 쓰며 이 자리까지 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맨시티가 과연 '축구의 정의'를 흐트려트렸는가는 다른 문제다. 우리가 알던 축구의 정의는 이미 이번 맨시티 관련 공방전 이전에 깨진 것이나 다름없다. 잉글랜드로 범위를 한정할 경우 2000년대 이전에 정해졌던 정의는 독주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가 리그를 지배하는 가운데 아스날 같은 이들이 도전장을 던지는 양상이 매 시즌 이어졌다.

이 양상을 깬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큰 손'들이다. 2003년 혜성같이 등장한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뒤 우승컵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맨유에게도 미국 구단주가 생겼고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에 이어 만수르에게 넘어간 맨시티가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뒤 유럽 축구계에는 '부자 구단주' 열풍이 불어닥쳤다. /사진=로이터
2000년대 초반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뒤 유럽 축구계에는 '부자 구단주' 열풍이 불어닥쳤다. /사진=로이터
비단 잉글랜드에서만 부는 바람이 아니었다. 카타르 투자청에 팔린 PSG, 상업적 유니폼 스폰서를 거부하던 FC 바르셀로나 가슴팍에 붙은 카타르 항공 마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체제를 깨고 들어온 RB라이프치히까지. 지난 20년 사이 축구의 정의는 '누가 축구를 잘해서 정상에 서느냐'라는 단순한 논리에서 '누가 축구에 돈을 효율적으로 써서 정상에 오르느냐'로 바뀌었다. 10년 넘게 이런 바람이 불면서 유럽축구계는 이런 풍토에 적응돼 갔다.
혹자는 이런 사례가 일부 부자 구단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단적인 예로 돈이 들어가면서 세계적인 선수가 몰리기 시작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10년 사이 유럽 최고 자리를 겨루는 리그로 성장했다. 매년 프리미어리그는 2조원대의 중계권료 계약을 맺고 이 돈은 또 구단들에게 돌아간다. 구단들은 이전보다 훨씬 넉넉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수단을 꾸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독주 체제로 대표되는 스페인 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도 점점 중하위권 팀들이 치고 올라오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추세다. 리그 전체의 가치와 상향평준화에 이런 '새로운 정의'가 일정 부분 기여하는 바가 분명 존재한다.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돈 많은 구단들의 경쟁 속에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어지간한 구단이 몇 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돈이 선수 한 명에게 투자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전반적인 상향평준화가 이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빈익빈부익부'가 고착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UEFA로서는 FFP를 대체할 새로운 구단 재정 관리 규정이 필요해졌다. /사진=로이터
UEFA로서는 FFP를 대체할 새로운 구단 재정 관리 규정이 필요해졌다. /사진=로이터
결국 핵심은 이런 자유방임한 시장을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관리할 수 있느냐다. FFP는 이미 이 역할을 해낼 수 없음을 증명했다. 관리를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유럽축구계에서 돈을 쓰는 것은 이제 또 하나의 정의로 자리잡았다. UEFA의 이번 징계는 어쩌면 10년 넘는 세월 동안 깊게 뿌리박은 새로운 풍토를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환점은 결국 거부당했다. 이번 판결로 우리가 알던 축구의 정의는 바뀌었다. 구단들이 자체적으로 이 정의를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UEFA가 정말 '정의로의 회귀'를 원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인 의지와 더 나은 대책을 안고 부자 구단들에게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