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수유리에 사는 지승환씨(37·남)는 얼마 전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는 차량을 구입하기 한달 전부터 인터넷 중고차사이트와 각종 커뮤니티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얻고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딜러와 통화 후 1시간 만에 차를 구입했다. 발품을 팔아가며 힘들게 차량을 구입했던 예전을 떠올리며 실속 있고 효율적인 선택을 했다고 자찬한다.
#2. 경기도 안산에 사는 권미경씨(31·여)는 최근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첫차를 중고차로 구입하기로 결심한 그는 친구의 조언으로 차종과 연식에 따라 현재 매매가격을 바로 보여주는 중고차 시황정보사이트에 가입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단가의 차량이 나오길 기다리며 매일 스마트폰을 주시한다.
시대가 변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산업전반에 걸쳐 이색풍경이 빚어진다. 사람들은 원하는 품목이 생기면 일단 검색부터 하고 상품가격과 종류를 조사한다.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이들조차 온라인에서 최저가와 제품 후기를 살핀 뒤 쇼핑하러 나선다. 우리는 이들을 일컬어 '역(逆) 쇼루밍족'이라 부른다.
역 쇼루밍족은 중고차매매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급부상 하고 있다. 이는 차량이 워낙 고가다 보니 발품을 많이 팔고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아야 제대로 된 차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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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이렇게 바뀌다보니 이젠 땡볕이나 한파를 뚫고 서울 가양동, 장안평 등 매매단지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중고차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터넷에 중고차 정보가 늘어난 덕에 집에서도 클릭 한번이면 중고차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서다. 온라인에 게시된 거래매물의 시세와 특징을 꼼꼼히 비교해본 후 매장을 방문해 구입하는 소비자가 열에 아홉이다.
이 같은 현상은 곧바로 오프라인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979년 11월 조성된 장안평 매매시장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700여개의 매매업체와 5000여명의 종사자, 하루 2만명의 유동인구를 자랑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거래를 통한 중고차매매가 활성화되면서 현재 이곳의 매매업체는 당시의 절반 수준인 400개로 줄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장 수와 방문자 수는 줄었지만 장안평 중고차시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중고차 수는 2000년 1500여대에서 지금은 2000여대가 넘는 등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의 발달로 차량 홍보수단이 진열에서 사진으로 바뀐 요즘, 굳이 고정비용을 들여가며 매장을 운영할 필요가 없어졌을 뿐"이라며 "많은 매장들이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서로 사무실을 합친 것 뿐이지 거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건물부터 일자리까지 변화하는 중고차시장
이러한 중고차시장의 변화는 일자리와 단지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과 몇해 전까지만해도 중고차 매매단지 앞에 진치고 있던 호객꾼은 줄어든 반면, 전화상담 전문직원이 매매업체마다 배치되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위해 인터넷 홍보를 맡은 인력도 늘었다. 물론 아직까지 대형 매매업체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일자리 변화이기는 하지만 중·소형 업체들도 온라인 홍보 만큼은 신경 쓰고 있다.
허름한 건물로 꾸려진 옛 중고차 매매단지의 모습 역시 쇼핑몰이나 백화점식 복합매장으로 탈바꿈했다. 전자식 정보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체계적으로 차량을 관리하거나 판매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자연스레 소비자들은 차량 구매는 물론, 용품 구매·튜닝 등 자동차 애프터마켓서비스를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고 자가 차량 점검이 필요하면 경정비서비스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가족 단위의 고객을 위한 외식공간도 갖춰 이젠 중고차 매매단지가 명실상부한 중고차 복합문화센터로 자리매김했다.
◆ '정보 비대칭성'시장의 변화가 시작됐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시작된 중고차시장의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정보 비대칭성(불균형)'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 비대칭성이란 조지 A. 애컬로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시장 실패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개념으로, 중고차시장에서는 매도자가 차량 결함 등을 잘 알고 있지만 매입자는 정보부족으로 비싸게 속아 사는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중고차시장은 정보 비대칭성이 늘 존재해 왔다. 아직도 여전한 상태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점점 완화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온라인 중고차 매매사이트가 성공하면서 관련 사이트가 급증한 이유도 정보 비대칭성에 대항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중고차 거래에 필수정보인 시세는 물론 사고 유무, 옵션 등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해소한다.
SK엔카의 경우 하루 평균 약 20만명의 소비자가 방문해 중고차에 대한 각종 정보를 찾는다. 대기업뿐 아니라 카즈, 인터파크 등 온라인 전문 중고차쇼핑몰도 생겨났다. 여기에 르노삼성 등도 온라인 중고차 비교거래사이트를 선보이는 등 그동안 혼탁했던 중고차거래시장에 정제적 효과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