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soy milk)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참 기가 막혀요. 사실 콩즙이잖아요. 그런데 두유라고 칭하면서 우유의 라이벌로 자리매김했죠.”
 
민은정 인터브랜드 상무는 “생각의 틀(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브랜드의 힘”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국내에 대형마트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인 20여년 전부터 브랜드 개발에 참여해온 민 상무. 브랜드업계 1세대로 통하는 그는 동서식품의 카누· 맥심 T.O.P, 기아자동차의 오피러스·로체, 아모레퍼시픽의 샴푸 려(呂), LG생활건강의 샴푸 리엔, 중소기업청의 홈&쇼핑 등 이름만 들으면 ‘아~’라는 탄성이 나오는 수많은 기업의 브랜드명과 사명을 만들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옛 대우종합기계죠. 두산이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했을 때 손쉽게 두산종합기계로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기계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세상의 인프라를 만드는 회사’라는 의미를 담아 두산인프라코어로 바꿨습니다. 이후 입사하는 사람들도, 주식 투자자도 그 기업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민 상무는 “브랜드명 개발은 세상에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땅을 찾아내는 탐험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소위 ‘땅 따먹기’에 비유된다. 문제는 이미 경치 좋고 기름진 땅은 대부분 선점됐다는 것. 갈수록 브랜드가 튼튼하게 뿌리 내릴 좋은 땅을 찾는 것이 어렵기에 더 매력적인 브랜드 이름과 미개척지를 탐험하는 과정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매력적인 브랜드명 탐험… 본질 vs 혁신
 
민 상무가 좋은 브랜드명 개발에 앞서 주목하는 것은 상품의 본질이다.
 
“T.O.P라는 상품명 개발에 앞서 동서식품 임직원들을 인터뷰했는데 ‘우리는 항상 커피만 생각하는 사람들’, ‘커피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라는 자부심이 상당했어요. 여기서 탑(TOP)을 끌어냈고 탑은 독점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에 분절해서 T.O.P가 나왔습니다.”
 
프리미엄 커피로 어필한 맥심 T.O.P의 탄생배경이다. 이 T.O.P는 커피의 원산지인 이티오피아를 연상케 하는 말이기도 해 ‘커피다운 이름’으로 커피업계의 호응도 얻었다.
 
중소기업청의 홈&쇼핑도 본질을 강조한 이름이다. “CJ, 롯데, GS 등 유통강자들이 즐비한 홈쇼핑업계에서 어떤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다 해도 이들을 이길 수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홈쇼핑을 최대한 강조해 홈&쇼핑을 고안했죠.”
 
반면 신기술 등 혁신을 강조한 제품은 이름도 혁신을 추구한다. 삼성디스플레이 윰은 ‘움직이다’는 뜻의 우리나라 고어에서 따왔다. 민 상무는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라는 혁신적 개념을 부여하기 위해 이름도 생소한 고어에서 가져왔다”며 “보통 글로벌브랜드는 영어에서 단어를 찾는데 미국의 브랜드 애플과 경쟁하는 삼성이기에 우리나라의 고어를 차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서식품의 카누 역시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새로운 개념의 커피를 알리는 데서 출발했다. 당시 커피시장은 아로마, 마일드, 프렌치 등 커피를 연상시키는 이름이 지배했기에 카누라는 새로운 단어를 주목한 것이다. “가루커피에서 원두커피 맛이 나는 게 신기했어요. 뉴 커피, 뉴 카페에서 출발해 뉴 카페를 거꾸로 해 카누가 탄생했죠.” 민 상무는 “브랜드 이름은 기본적으로 제품과 어울리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의 브랜드명을 위해 1000개 이상의 말을 찾아도 상표 검색과정에서 대략 80%가 떨어지고 (국가별·지역별) 언어적인 문제로 또 절반이 탈락한다”며 “창조적 작업이라기보다 노동집약적 작업”이라고 말했다.


 

/사진=임한별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시대 따라 변하는 브랜드명 기준

예나 지금이나 좋은 브랜드명의 핵심은 간결하고 본질을 잘 표현하는 데 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이름이 있듯 시대에 따라 좋은 브랜드명도 변화한다.
 
“마트에서 물건을 보고 고르던 시절에는 쉽게 풀어주는 이름이 각광 받았어요. 상품명이 길어도 보고 고르면 되니까요. 하지만 디지털시대에는 기억력이 중요해졌죠. 이름을 기억해야 검색하고 구입하니까요.”
 
글로벌화도 필수요소다. 민 상무는 “10년 전만 해도 준비하는 브랜드 중 글로벌시장을 겨냥한 브랜드는 10개 중 1개꼴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순수국내용 브랜드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모든 기업들이 글로벌을 외침에도 각 나라의 정서와 문화를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민 상무는 안타까워한다.
 
“요즘 중화권 시장이 매우 중요해졌잖아요. 그럼에도 중국 본토에서 개발하면 중화권 모든 국가에서 범용으로 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한자를 쓰는 국가라 해도 정서가 다른 개별국가로 보고 공략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그는 성공적인 브랜드 개발을 원하는 기업들을 위해 “시야를 넓히라”고 조언했다. “일진머티리얼즈라는 회사는 브랜드 대신 제품의 카테고리명을 바꿨습니다. 구리박을 제조하는 회사에서 일렉포일(Elecfoil)을 제조하는 회사로 명하면서 인식의 개선 효과를 끌어냈죠. 설화수의 ‘피니셔’도 로션, 크림 등 기본상품군에서 새로운 피니셔라는 상품군을 만들어낸 것으로 네이밍이 가지는 힘과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입니다.”
 
민 상무는 “브랜드를 상품뿐 아니라 기술의 과정, 서비스 등까지 다각적으로 응용해보라”고 권했다. 유방암 캠페인인 ‘핑크리본’처럼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기업의 사회공헌(CSR)활동도 차별화된 이름으로 상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시야를 넓히면 짜투리여도 아직 깃발을 꽂을 수 있는 값진 ‘땅’이 곳곳에 있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