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 대표 주류인 막걸리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소비를 이끌고 있다. /사진=한강주조 제공
기성세대 대표 주류인 막걸리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소비를 이끌고 있다. /사진=한강주조 제공

# 아빠처럼 살기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오늘따라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날처럼 막걸리 한잔~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고사리손으로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 강진의 ‘막걸리 한잔’

#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할아버지 막걸리 좋아하셨지. 저녁노을이 물들 때면 막걸리 심부름 간다네~ 잔돈은 너 가져라… 막걸리 주전자 넘칠까 한모금 꼴깍 달짝지근 어느새 얼굴 빨개 걸음도 비틀비틀… 세월이 흘러 문득 돌아보니 그 시절 너무 그리워~ 막걸리 한잔에 에헤라 추억에 젖는다 -이용복의 ‘막걸리 추억’

막걸리. 듣기만 해도 향수병을 일으킨다. 막걸리는 흔히 ‘아재술’(아저씨술) ‘노동주’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 막걸리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 기성세대 대표 주류인 막걸리가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소비를 이끌고 있는 것. 외국인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시장 판도는 더 커졌다. 아재술에서 ‘만인의 술’로 거듭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막걸리. 주류업계 신흥강자로 떠오른 막걸리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막걸리 이미지 변신 ‘통했다’



유통업계는 막걸리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진=이마트, 복순도가 제공
유통업계는 막걸리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진=이마트, 복순도가 제공

주류업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젊은 층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막걸리가 소주·맥주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이 같은 제2의 전성기는 규제 완화 영향이 크다. 2015년 맥주에 한정된 소규모 주류 제조 및 판매 면허가 막걸리 등 전통주까지 확대됐다. 세법이 개정되면서 1000ℓ 이상 5000ℓ 미만 저장 용기를 구비하면 누구나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2017년부터 막걸리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서 시장의 판을 키웠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2~2016년 3000억원대였던 국내 막걸리 소매시장 규모는 2017년 3500억원대에 이어 ▲2018년 4000억원대 ▲2019년 4500억원대 규모로 성장했다.

유통업계에서도 막걸리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잡기 위해서다. 이마트의 ‘지평이랑이랑’이 대표적이다. 지평이랑이랑은 이마트와 지평주조가 손잡고 지난 7월 출시된 제품으로 탄산감을 극대화한 스파클링 막걸리다. 기존 막걸리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를 사로잡았다. 지평이랑이랑 출시 이후 이달 초까지 이마트 막걸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8% 성장했다.

MZ세대를 통한 매출 신장 가능성에 희망을 품은 업계는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새로운 전략을 시도했다. 대중성보다 희소성에 주목하는 MZ세대를 겨냥해 한정판 굿즈(특정 브랜드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를 선보이는가 하면 고급화 전략을 내놨다.

최초의 샴페인 막걸리로 알려진 ‘복순도가’가 그 예다. 복순도가는 가격이 1만2000원으로 막걸리 치고 비싸지만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남도현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MZ세대에 맞춰 막걸리 시장이 변한 뒤 그 발전 속도가 어마무시하다”며 “업계에 긍정적 신호라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막걸리 이젠 ‘K-주류’




최근 미국 유명 요리 유튜버 ‘아담 라구시아’는 자신의 채널에서 막걸리를 소개했다. /사진=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공
최근 미국 유명 요리 유튜버 ‘아담 라구시아’는 자신의 채널에서 막걸리를 소개했다. /사진=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공

젊은층뿐 아니라 외국인도 막걸리에 빠졌다. 최근 미국 유명 요리 유튜버 ‘아담 라구시아’는 자신의 채널에서 막걸리를 소개했다. 그는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마시는가 하면 막걸리 역사를 설명하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막걸리는 국내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식당에서 한두번 먹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업계에 따르면 막걸리 시장 부동의 1위인 서울장수의 올해 3분기까지 수출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12% 올랐다. 이는 신제품 효과가 더해진 결과다. 지난 7월 출시한 ‘장홍삼 막걸리’는 수출 전용 상품으로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처음부터 알코올 도수를 4도로 낮췄다. 외국인 입맛에 맞춘 막걸리를 출시하면서 수출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국순당도 마찬가지다. 국순당은 올 9월까지 해외에서 매출 406만달러(한화 44억)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2.8%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 생산은 크게 어렵지 않다”며 “현지인 입맛에 맞는 신제품 개발이 성공 가도를 걷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막걸리 시장 새로운 패러다임 ‘청년 양조인’



최근 막걸리 전문가와 청년 양조인이 다수 등장했다. /사진=한강주조 제공
최근 막걸리 전문가와 청년 양조인이 다수 등장했다. /사진=한강주조 제공

막걸리 시장의 새로운 바람은 제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에 없던 막걸리 전문가가 탄생했고 청년 양조인도 다수 등장했다. 2000년대 막걸리학교와 한국가양주연구소 등 전통주 교육훈련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 수료자가 최근 직접 막걸리 빚기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막걸리 전문가를 탄생시켰고 최근 청년 양조인이 다수 등장하면서 젊은 감각으로 재탄생됐다. 

이들은 막걸리 맛부터 디자인·마케팅 등 기존 주류업체와 다른 행보를 보이며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쌀 함유량을 높여 달달하되 숙취 없는 막걸리로 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성수동 한강주조 ▲구수동의 구름아양조장 ▲논현동의 C막걸리 등이 서울의 대표적인 청년 양조장이다. 양조장하면 시골에서 술을 만드는 전통적인 인상이 강하지만 최근 양조장은 서울 등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는 경향을 띤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막걸리 시장이 청년 양조인 중심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는 “청년 양조인은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MZ세대에 속한다”며 “막걸리 생산에 MZ세대 가치를 담아 소비층을 확대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더불어 “청년 양조인은 정보기기 등을 이용해 기존 유통채널 대신 다양한 마케팅 플랫폼으로 시장을 넓혀가기에 최적화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