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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 분야를 취재하다 보면 이같은 ‘패배적’인 말을 하는 전문가들을 만나곤 한다. 물론 백신·치료제를 연구하다가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도중에 포기하면 안 된다. 그동안 쌓아온 개발 지식과 기술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스나 메르스 때 연구개발을 완주했더라면 코로나에 더 빨리 대처할 수 있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자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백신·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먼저 제품을 출시하는 회사는 시장을 독점할 수 있어 이른바 ‘전쟁’이라 할 만큼 치열했다. 그 결과 현재 백신후보물질 107개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연구에 들어갔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등은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에 반해 국내는 가장 빠른 곳이 임상 3상에 막 들어간 SK바이오사이언스뿐이다. 나머지 국산 백신은 개발을 완수할지 미지수다.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보다 업력이 짧은 국내 기업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중도 포기하는 곳도 생겼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기업문화 때문일까. 국내 백신·치료제 개발사들은 ‘언플(언론플레이)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 속에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한 글로벌 제약사 로슈엔 실패를 칭찬하는 기업문화가 있다고 한다. 실패하지 않는 분야에만 도전하는 것은 안주하는 것과 같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어려운 도전을 받아들였던 개척 정신을 축하하며 실패담을 나누고 실패 요인을 분석하기 위한 토론을 펼친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성공 사례보다 잘못된 판단을 공유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계기로 삼는다. 신약 연구에 실패했을 때마다 사람들이 돌을 던져왔다면 한참 전에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라는 국내 한 바이오기업인의 자조 섞인 농담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길게 봤을 때는 실패를 많이 해본 기업이 더 빨리 성공할 수 있다. 아마존, 인스타그램, 테슬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앞서 두 차례 이상 폐업이나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들 모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기업은 실패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이들을 지원하고 백신·치료제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백신·치료제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정부의 정책 지원이 이들에 좀 더 집중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지식을 축적하고 개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백신 개발에 성공한 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는 작은 회사였지만 정부 지원을 받고 기술력을 축적해왔다. 바이오엔테크의 창립자 우우르 샤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는 줄곧 mRNA만 연구했다. 매출이 수년간 없던 모더나도 mRNA 기술만 꾸준히 개발해왔다. 준비된 기술은 코로나가 터지자 빛을 발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가는 준비 과정에서 기업들에겐 실패하더라도 연구를 완주하는 뚝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실패에서 좌절만 배운다면 성공은 없다. 실패는 단지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