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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난해 12월24일부터 29일까지 ‘디지털 노마드족’이 주로 선호하는 장소를 찾아 나섰다. 어떤 곳이든 ‘자유’와 ‘안정감’을 모두 충족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카페에서 업무를 하는 모습. /사진=최다인 기자 |
이처럼 디지털 기기를 하나 이상 지닌 채 카페나 스터디카페, 공공도서관 등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이들을 디지털 노마드족'이라 부른다. '노마드'(nomad)란 몽골 등 건조한 평야 지대에서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좋은 목초지를 찾아 이동생활을 하는 유목민을 뜻한다.
노마드족도 활동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이동한다. 이들에겐 와이파이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작업 공간이다. 집이 아닌 다양한 장소를 선호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 역시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노마드족을 흔히 볼 수 있는 카페·스터디카페·도서관 등을 체험했다.
"충전기 좀 빌려주세요"... 노마드족 성지 '카페'
디지털 노마드족의 성지인 카페에서는 자유와 공허감을 함께 느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 /사진=최다인 기자
카페는 노마드족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다. 이에 기자는 지난달 24일과 26일 노트북을 들고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카페를 찾았다. 노마드족에 가장 인기있는 장소답게 카페에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보다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카페 안은 잔잔한 캐롤 음악과 함께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로 채워져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일종의 '전우애'를 느끼기도 했다. 늦은 시간까지 카페에 남아있던 한 사람이 다가와 기자에 "충전기 빌려도 되냐"고 물었다. 기자는 충전기를 건네며 "천천히 쓰시라"고 화답했다. 카페에 머문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같이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묘한 위안을 받기도 했다.
노마드족에 동질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채울 수 없는 공허함도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편하게 말 걸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카페에서 마음 편한 노마드족이 되긴 어려웠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전기와 와이파이를 마음껏 누릴 수 있지만 장시간 머물면 회전률을 낮추는 손님이 되는 것 같은 미안함 때문이었다.
기자의 걱정과 달리 카페 업계는 전반적으로 '노마드족'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 업계 관계자 A씨(43·남)는 "'충성고객' 확보를 위해 디지털 노마드족이 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하루에 한 잔 마신다해도 자주 찾아준다면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독서실이야 카페야"... 휴식과 긴장 사이에 놓인 '스터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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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카페는 대화를 제한하면서도 다양한 편의 공간을 갖추고 있어 독서실과 카페를 동시에 연상케 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스터디카페. /사진=최다인 기자 |
스터디카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회원 등록'을 해야 한다. 평소 스터디카페를 자주 찾지 않아 등록 절차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곳의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제가 해드려도 되냐"며 말을 건넸다. 기자는 도움을 받아 입·퇴실을 위한 '지문 등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스터디카페 책상에 붙여있는 '대화 자제' 안내문이 공부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독서실을 연상케 했다. 노트북 사용 등이 허용되는 자유를 만끽함과 동시에 '정숙'이라는 제약 때문에 카페보다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일반 카페와 닮은 점도 있다. 스터디카페 내부에는 잔잔한 클래식 노래가 흘러나오며 한 쪽에는 음료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기자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욕구와 일에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의 합의점을 찾았다.
물론 이같은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간제로 회원 등록을 하지 않으면 매번 올때마다 키오스크를 통해 좌석·이용시간 등을 재입력해야 한다. 잠시 나가거나 들어올 때 반드시 '지문 확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책임과 한계를 부여하는 장소... 진입장벽 낮은 '공공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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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도서관은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이용에 많은 제한이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소재 한 공공도서관 일반자료실 모습. /사진=최다인 기자 |
일반 자료실 내 노트북 사용을 허용하는 공간이 있었지만 주의할 점이 많았다. 다른 이용객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무선 마우스 및 터치패드 사용을 권고한다. 문서 작성 시엔 별도의 공간(디지털자료실)을 사용하길 권하기도 했다.
직업 특성상 노트북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 타자기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하지만 주변이 너무 조용한 나머지 기자의 타자 소리만 크게 울렸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기자는 자리에 앉은 이후 30분도 채우지 못하고 일어났다.
디지털 노마드족에 '게르'(ger)란?... "삶의 절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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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족이 집을 떠나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자유와 안정감 사이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투데이 |
실제 체험 장소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은 곳은 카페다. 대화와 업무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카페는 고독하긴 싫지만 자유롭고 싶은 디지털 노마족들의 성지다.
노마드족이 집을 떠나 다른 장소를 찾는 이유는 '자유'와 '안정감' 사이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로 보인다. 한 장소에 고정적으로 속해 있으면 안정적이지만 자유롭긴 어렵다. 반대로 몸과 마음이 자유로우면 소속감은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노마드족은 자유와 안정을 절충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셈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 소장은 "디지털 노마드족은 집밖이라는 자유 속에서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까지 느끼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카페·스터디카페 등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찾은 삶의 절충안"이라며 "그곳에는 친근한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과 같이 업무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여기서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고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