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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건설협회장은 1만2000여개 회원사로 구성된 국내 최대 건설단체의 장이자 16개 협·단체로 구성된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장을 겸직한다. 건설업계를 대표해 정부와 국회 등에 법령과 제도 개선을 요구할 수 있고 상호협력을 도모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협회장 개인의 관점으로 보면 명예와 함께 업계 안팎의 인맥을 쌓고 특히 정치권과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고 평가된다.
김상수 현 대한건설협회장(한림건설 회장)은 2019년 제28대 회장 선거를 통해 당선, 이듬해인 2020년 3월부터 4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임기 종료는 2024년 2월 말이다. 직전인 27대 회장까지는 협회장의 임기가 3년이었으나 1년 늘어난 4년으로 하되 연임은 못하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김 회장의 한림건설은 2019년 선거 당시 시공능력 91위(평가액 3200억원)였으나 2023년 현재 141위(1888억원)로 추락했다. 그 사이 연고지를 경남 창원에서 경기 용인으로 옮겼다. 경남도회 소속에서 경기도회 소속으로 바뀐 것이다. 대표이사는 이병진씨로 교체했다.
선거 당시 김 회장은 '대형-중견·중소 건설업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책 부문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동반성장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정례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임기 4년 동안 김 회장은 종합-전문 건설업의 상호 진출 반대 등 중소건설업체 이익만을 대변하고 정관 변경을 통해 셀프 연임을 시도하려다가 회원사들의 반대로 철회하는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뒷얘기가 무성한 골프장 인수 등으로 개인 자산도 크게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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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위상 추락
건설협회는 2002년부터 '지방의 중견·중소업체 오너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자조적인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역대 협회장을 보면 초대 회장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 장영수 대우건설 대표 등 건설산업 발전의 굵직한 획을 그은 총수나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가 맡았다.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들어 마형렬(남양건설) 권홍사(반도건설) 최삼규(이화공영) 유주현(신한건설) 김상수(한림건설) 회장까지 중견·중소업체의 대표가 협회장을 맡아 교섭력이 크게 약화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협회장을 맡은 이화공영과 신한건설은 당시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각각 126위, 683위였다.협회장 선거가 상호 비방과 이전투구 양상으로 흐르며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2004년 말 당시 재선을 노렸던 호남의 마형렬 회장과 신규 회장 진입을 갈망했던 영남의 권홍사 회장 간의 협회장 선거는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에 비견됐다. 이후 선거 때마다 정책과 공약보다는 상호 비방전이 펼쳐졌다. 그 사이 지방의 일부 시·도 회장들도 지역 건설 발전보다는 협회비로 개인 활동을 하는 등 사실상 사기업화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협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이 격화된 데에는 유관기관인 건설공제조합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된다. 자본금 6조5000억원을 보유한 건설공제조합은 건설협회와 마찬가지로 건설업체들이 조합원인 건설단체다. 조합원에 필요한 사업자금 대출과 보증을 지급하는 금융회사 성격을 갖는다.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건설공제조합지부는 올 5월 상임감사 자리에 대통령실 경호처 퇴직 관료를 선임한 것에 대해 반대하며 "조합 정관이 보장한 민주적 선임 절차를 무시하고 전문성 없는 인사를 내정하는 데 건설협회장이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운영위원 추천을 거쳐야 하는 인사 절차를 무시하고 총회에서 일부 대의원의 반대 의견에도 선임을 강행했다"며 "이는 조합원인 운영위원이 건설협회에 가입돼 있고 건설협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제조합 운영위원회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사업과 예산에 대한 심의·의결과 업무 집행 감독을 수행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2020년 대한전문건설협회장과 전문건설공제조합 운영위원장을 겸임해 각종 비리가 적발된 '제2의 박덕흠 사태'를 막기 위해 건설단체 협회장이 공제조합의 당연직 운영위원을 겸임할 수 없도록 한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현재는 김 회장이 공제조합 운영위원에서 제외됐으나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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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업체 회원사들과 이중 행보
1997년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설립 이후 건설협회장이 당연직 건설단체총연합회장(건단연 회장)을 동시에 수행해 온 점도 논란거리다. 건단연이 건설단체 대표자로서 중심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순환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는 2019년 전문건설공제조합이 건단연을 탈퇴한 이유로 지목됐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2020년 3월 김상수 회장 취임 후 연합회 공동회장을 선출하는 방안을 수용 시 재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전문건설공제조합의 탈퇴 이전 건단연의 회비 분담률을 보면 건설공제조합 50%, 전문건설공제조합 17%, 대한건설협회 11% 등이었다. 2022년 기준 연합회의 총예산은 14억5170만원이다.
2011년에는 대형-중소 건설업체 간의 갈등이 표면 위로 부상했다. 대형사는 공공기관 발주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주택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해 온 중견·중소업체는 반대했다. 건설협회가 건설업계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면서 업체들은 새로운 단체를 구성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단연 소속 한국주택협회는 자본금 100억원 이상 대형건설업체 63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 주택협회는 지난해 9월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을 임기 3년의 회장으로 선출했다. 국토부 등 정부기관에 정책 개선을 건의하고 국회에 법 개정을 요구하는 등의 전달자 역할은 건설협회와 같다. 윤 회장 이전의 전임자들을 보면 김대철 HDC현대산업개발 고문, 김한기 대림산업(현 DL이앤씨) 고문, 박창민 대우건설 사장 등 전문경영인이 주를 이뤘다.
주택협회는 지난해 윤 회장을 선임하기 위해 회장추대위원회를 구성하고 설득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이 협회장을 맡는 경우 장·단점이 있다"면서 "임기 내 실적 등 성과를 내야 하는 사장이 대외 업무를 수행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무보수 봉사직 성격인 협회장 업무에 있어 사익 추구 등 이익 충돌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의원 간접투표제 방식이 불공정성 지적을 받는 이유 중에 대의원단이 중소건설업체 회원사만으로 구성된 점이 있는데, 대-중소기업 회원사로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2년 출범한 한국건설경영협회도 24개 대형 건설업체를 회원사로 두고 있다. 한국건설경영협회는 창립 이후 김정국 현대건설 사장을 비롯해 장영수 대우건설 사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하석주 롯데건설 사장 등 대형건설기업들이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