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그룹 '걸스데이' 멤버 민아와 열애를 인정한 손흥민이 30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LG전자 초청 바이엘 04 레버쿠젠(이하 레버쿠젠) 한국투어 2014 FC 서울과의 경기에 선발로 그라운드에 나와 차범근 해설위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4.7.30/뉴스1 ⓒ News1 박정호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국내 축구팬들 사이 '손차박 논쟁'이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 한국 축구의 자랑인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중 누가 더 뛰어난 선수냐는 갑론을박이다. 굳이 정답을 찾자는 것보다는, 우리에게도 '세계 레벨' 선수가 있다는 행복한 입씨름에 가깝다.

이중 선구자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현재 진행형 손흥민은 '닮은 꼴'이다. 헌신적인 미드필더 박지성과 달리 차범근과 손흥민은 득점력을 갖춘 공격수고 시원한 주력을 앞세운 스타일도 비슷하다. 독일 분데스리가가 커리어의 뿌리라는 것도 동일한데 나란히 유로파리그(UEFA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큰 공통점도 생겼다.


토트넘은 22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의 2024-25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1-0으로 승리,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 손흥민은 1-0으로 앞선 후반 21분 투입돼 25분가량 뛰며 승리에 기여했다. 2020-21시즌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득점왕에 오르는 등 개인 성과로는 남부러울 것 없던 손흥민이 '무관'을 탈출하던 순간이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21일(현지시간)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경기장에서 열린 UEFA 유로파 리그(UEL) 결승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꺾은 뒤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2025.05.22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대한축구협회가 추진한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젝트'에 선발, 2008년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한 것이 전설 손흥민의 출발이었다. 그는 2009년 함부르크와 정식 계약을 맺었고 2010년 A팀으로 승격, 프로 무대를 밟았다.


함부르크에서 기본기를 닦은 손흥민은 2013년 분데스리가 전통의 강호 레버쿠젠에 입단,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2013-14시즌 31경기 10골, 2014-15시즌 30경기 11골로 경쟁력을 입증한 그는 2015년 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부름을 받아 EPL에 입성했다. 그리고 10년의 기다림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거짓말처럼, 손흥민이 트로피에 입 맞추던 2025년 5월22일은 차범근 전 감독의 72번째 생일이었다. 동시에 선수 차범근이 처음으로 UEFA컵을 들어 올린 날이다. UEFA컵은 유로파리그의 전신이고, 차범근 전 감독은 커리어 통산 두 번 UEFA컵 정상을 경험했다.

1978년 다름슈타트에 입단하면서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차범근 전 감독은 이듬해 프랑크푸르트 유니폼을 입으면서 '차붐' 신화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80년,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UEFA컵 정상에 섰다.

당시 결승전 방식은 홈&어웨이였다. 같은 분데스리가 소속 보르시아뮌헨글라드바흐와 결승에서 격돌한 프랑크푸르트는 1차전 3-2에 이어 2차전도 1-0으로 승리, 챔피언에 등극했다. 프랑크푸르트 홈에서 열린 2차전 날짜가 공교롭게도 1980년 5월22일이었다.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이 2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출정식에서 차범근 전 감독과 함께 런웨이에 오르고 있다. 신태용호는 출정식 후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로 옮겨 첫 담금질에 돌입하는 등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2018.5.2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차 전 감독은 손흥민이 유로파리그를 품던 22일 자신의 SNS에 "흥민이가 나의 생일날 아침에 UEFA Cup을 들어 올렸다"며 "내가 그 무거운 컵을 들어 올리던 날도 21일 밤이었고 우리 시간으로는 22일이었지"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날 밤 우승 파티를 하면서 생일을 맞았는데 굉장한 우연"이라며 "평생에 한 번 받기 힘든 고마운 선물이다. 무턱대고 축하만 하기에는 그의 수고를 알기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우리 흥민이 수고했어, 최고"라고 덧붙였다.

두 전설의 시간을 초월한 인연은 '레버쿠젠'으로도 연결된다. 차범근 전 감독은 1983년 당시 최강 클럽 레버쿠젠으로 이적했고 1988년 다시 한번 UEFA컵 정상을 밟았다. 그땐 차붐이 명실상부 주인공이었다.

스페인 에스파뇰이 결승 상대였는데 원정 1차전을 0-3으로 패해 전망이 어두웠다. 하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서 똑같이 3-0 승리를 거뒀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던 2차전 3번째 골을 비로 차범근이 기록했고, 레버쿠젠은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4년 7월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K리그 FC서울과 레버쿠젠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레버쿠젠 소속이 된 손흥민을 앞세운 이벤트 경기였는데, 그 경기에서 시축을 하고 선수들을 격려한 이가 차범근 전 감독이었다.

레버쿠젠 전설 차붐과 레버쿠젠서 성장해 또 다른 전설이 된 손흥민. 2014년 여름 상암벌에서 손흥민을 격려하던 차범근 감독은 2025년 자신의 생일에 이런 선물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